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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모순된 개념과 그 극복방식(신문학사 탐구: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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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모순된 개념과 그 극복방식(신문학사 탐구:20)

입력
1996.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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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으로 단련·성숙 “위대한 5년”/민족과 계급­안함광 등 민족적 형식으로 계급해방의 내용 포착/문학과 인간­김동리 운명을 발견·타개하는 “구경적 형식” 갈파/문학과 사상­김동석 “문학은 일상적 삶에 밀착된 것 아닌 관념”/문학과 생활­조연현 “관념·신앙을 문학사상과 구분” 문제제기객:해방공간에서 6·25 직전까지 우리 문단도 문학도 큰 시련이랄까 내적 외적 갈등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헤겔식으로 말해 타자의 승인을 향해 투쟁에서 단련된 경우라면 필시 그만큼 위대한 시대일 터이고, 그에 어울리는 문학적 성숙이 이루어졌음에도 틀림없겠는데.

주:좋은 시각이군요. 강철모양 정신은 시련으로 단련될수록 순도 높은 경지에 이르는 법이니까.

객:남북을 통틀어, 그러니까 북로당, 남로당이 함께 직면한 최대의 이론적 난제는 무엇일까. 계급성과 민족성을 모순 없이 설명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왜냐하면 그들도 한결같이 민족문학 건설을 내세웠으니까.

주: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북로당이 내세운 나라 만들기 모델은 국가사회주의, 그러니까 프롤레타리아 독재형 국가이고, 남로당의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농민, 소시민의 연합독재(인민연대)형 국가이지요. 사회민주주의 국가이든 인민민주주의 국가이든, 해결해야 할 최대 난제가 민족성과 계급성의 무모순관계가 아닐 수 없지요. 어째서 계급성이 민족성과 모순되지 않는가. 북쪽의 최고이론가 안함광의 이에 대한 이론적 천착과정은 임화보다 앞섰다는 점에서 주목되지요.

객:그만큼 남로당보다 북로당 쪽이 이 문제에 다급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주:그렇게도 볼 수 있지요. 문학가동맹이 전조선문학자대회를 계기로 체제 정비를 강화해 갈 무렵, 이를 「서울중심주의」라 하여 전면 거부한 북한문학인들이 「평양중심주의」를 깃발처럼 내세우면서 북조선예술총동맹(1946.3)을 조직, (1)진보적 민주주의에 입각한 민족예술의 수립 (2)예술운동의 전국적인 통일조직 (3)일제적·봉건적·반민족적·파쇼적 및 반민주주의적 반동예술의 세력과 그 관념의 소탕 (4)인민대중의 문화적·창조적 예술개발을 위한 광범한 계몽주의운동 전개 (5)민족문화유산의 정당한 비판과 계승 (6)우리의 민족문화와 국제문화와의 교류 등을 강령으로 삼았는데, 보다시피 온통 「민족문학」투성이 아닙니까. 제2차 확대회의(1946.10.13)를 거쳐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 명칭을 고치고, 「북조선문화의 전모」(1946.11.20)를 발표할 당시 안함광이 도달한 이론 수준은 민족성과 계급성의 모순 해결에 걸려 있었음이 판명됩니다. 북조선의 민족문학노선이란 『근대적 의미의 민족문학이 아니라 진보적 민주주의 민족문학』이라는 수준이 그것.

객:전조선문학자대회 석상에서 임화가 제시한 것이 「근대적 의미의 민족문학」노선이 아니었던가요? 안함광이 이를 의식하고 그들 독자의 노선을 제시했군요. 시민성을 중심으로 한 민족문학에서 임화가 머물고 있었다는 것, 그것은 반동적 민족문학이겠는데….

주:안함광이 민족성·계급성의 무모순에 이르는 논리는 「계급적 현실의 본질을 민족생활의 전적 발전과의 연계 위에서 포착 형상화함에 있어서 아무런 주저도 가지지 않았다는 점」(「민족문학재론」, 1947)에 집약됩니다. 진보적 민주주의(사회주의)의 내용을 민족적 형식으로 포착하는 것이 국가사회주의 예술의 기본공식인데, 이를 토대로 하여 안함광은 민족성·계급성의 모순(이분법)을 넘어선 것이지요.

객:비슷한 시기에 임화도 그런 수준에 이르지 않습니까. 「민족문학의 이념과 문학운동의 사상적 통일을 위하여」(「문학」 제3호)를 보면 임화 역시 「근대적 민족문학」(시민성)을 오류라 하여 비판하고, 계급성에 입각한 민족문학에 이르지 않습니까?

주:『민족해방은 계급해방의 불가결한 전제요 그 제일보』라는 임화의 표현 속에서 민족성·계급성의 무모순(일원화)이 달성된 것입니다. 식민지의 노동계급은 먼저 제국주의와 봉건유제의 속박에서 자기 민족을 해방하지 않고는 자기 자신이 해방되지 않는 계급이라는 사실.

객:무모순(일원화)이라고는 하나, 양쪽 다 잠정적인 수준 아닙니까. 만일 민족해방이 달성되면, 계급문학 속에 민족문학이 흔적도 없이 될 테니까. 그때 가서는 「민족문학」이라는 용어도 「계급문학」이라는 개념도 없어지고 오직 사회주의문학, 인민의 문학, 당의 문학으로 되지 않겠는가. 적어도 논리상으로는 그렇겠지요.

주:…….

객:이른바 민족주의진영의 민족문학론에는 무슨 모순개념이 없었던가요? 그 점도 궁금하기 짝이 없는데요. 끝내 김동리는 문학가동맹이 「민족문학」이라 외치는 것을 이해하고자 들지 않았지요. 계급문학의 탈을 쓴 사기술이라 하여 일거에 밀어붙였으니까.

주:김동리의 문학관이 분명해진 것은 30년대 말기. 『자기의 맥박(개성)과 세계의 리듬이 일치되기만 하면 아무리 몽환적이라도 리얼리즘(진짜문학)』이라 갈파했었는데 해방공간에서는 이를 다음처럼 명제화하지요. 「구경적 생의 형식」이라고. 「인간에게 공통으로 부여된 천지와의 유기적 관련성(운명)을 발견하고 이것의 타개에 노력하는 것」으로 규정되는 삶이 「구경적 삶」이고, 그것의 형식이 문학이라는 것이라고 풀이해 놓고 있습니다(「문학하는 것에 대한 사고」, 1948.3). 그리고 또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지요. (1)구경적 삶이란 종교, 철학, 교육, 문학등으로 모두 가능하며 (2)구경적 삶의 형식만을 「문학하는 것」이라 규정하지 않으며, 다만 자기의 문학만은 그렇다는 것. 「문학하는 것」에는 수만의 등차가 있어 다 인정되지만, 자기는 이것만이 최고 형식이라 생각한다는 것.

객:잠깐. 구경적 삶의 형식이 최고의 문학이고, 계급문학이나 기타 문학은 문학이되 최고 지향의 것이 못된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그것이 종교의 형식과 어떻게 다른가. 인간운명(원형)의 구경적 형식이란 종교라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점이 제일 궁금한데요.

주:정작 그런 의문을 정면으로 던진 이가, 같은 진영의 비평가 조연현이지요. 그는 이렇게 비판합니다. 『「구경적 삶의 형식」이란 기도하는 형식, 염불하는 형식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는 완전한 한 개의 종교일 수 있다』(「문학의 영역」, 1949.4)라고. 『구경적 삶의 형식에 대한 공동의 의욕을 가졌다는 동일한 목적의식에 현혹되어 관념과 신앙을 「사색」과 혼동함으로써 문학을 종교나 철학의 영역에까지 끌고 갔다』라고.

객:과연 면도칼이란 별명을 가진 조연현다운 통찰이군요. 종교가 이미 발견되어진 구경적 삶의 형식이고 더 나갈 데가 없는 것이라면 문학은 거기에 도달코자 노력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무지개와 같은 것이 문학이다?

주:맞습니다. 종교의 기초내용이 신앙이며 철학의 그것이 관념이라면 문학의 그것은 「사상」이라는 것. 물론 사상이 구경에 달하면 신앙화, 관념화하는 수도 있으나 그땐 이미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 신앙(종교), 관념(철학)일 뿐.

객:그러니까 구경적 삶의 형식이란 다만 문학이 지향하기는 하나 그것이 문학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닌데도 이를 혼돈한 곳에 김동리의 착각이 있었다?

주:평론집 「문학과 인간」(1948)을 낼 때, 김동리는 이 대목을 대폭 수정하여 수록했음이 확인됩니다. 요컨대 김동리가 직면한 모순개념은 「문학과 인간」에 있었지요. 평론집 제목이 이 사실을 상징하는 것. 「인간은 생물이다」라는 명제인 만큼 절대로 틀리지는 않지만 차이성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근대성의 시선에서 보면 하나마나 한 발언이라고나 할까.

객:「문학과 인간」이라는 이 이원론을 어떻게 하면 극복하느냐가 김동리의 과제이고 그 실현방식이 「역마」라면 조연현의 그것은 「문학과 사상」일 터인데. 왜냐하면 조연현은 비평가인지라 「역마」나 「무녀도」를 쓸 수 없으니까.

주:정확합니다. 『백 편의 평론을 써도 한 편의 작품을 따를 수 있느냐 하는 자문자답은 나에게 있어 치명적이 아닐 수 없었다』(「근사록」, 1949.4)라는 고백 속에 조연현의 난제가 가로놓여 있었지요. 사상을 다루는 것이 문학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문학작품으로 되어야 하는 것. 비평의 자립성이지요.

객:비평이 작품의 가치평가나 해설이 아니라 작품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겠군요. 그런데 과연 비평도 작품이 될 수 있습니까?

주:성취 여부와는 별도로 바로 이 강박관념이야말로 소중한데, 왜냐하면 비평의 예술성을 맨 처음 문제삼았기 때문이지요. 비평사의 선을 그은 대목이라고나 할까.

객:「민족과 계급」 「문학과 인간」 「문학과 사상」 등의 모순성의 발견과 그 해결의 모색에 골몰한 시대, 과연 해방공간은 이러한 문제제기만으로도 위대한 시기였다고 보겠는데요.

주:그 뿐이 아닙니다. 또 다른 아주 중요한 난제도 제시된 바 있습니다.

객:「문학(예술)과 생활」 아닙니까.

주:맞소. 김동석에 의해 제시된 이 과제는 그의 평론집 제목 「예술과 생활」(1947)에서 보듯, 「문학과 생활」의 모순은 각별한 의의를 머금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문학이란 일상적 개개인의 삶에 밀착된 것이 아니고 관념(상아탑)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니까.

객:지식인 특유의 서양 교양주의겠군요. 유진오, 백철등, 서양 교양주의자들이 넥타이랄까 의상이랄까, 그런 취미의 일종으로 갖추는 것이 「문학」이었던 것. 요컨대 그들이 말하는 문학이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의 일종이었다? M 아놀드를 전공한 영문과 출신의 김동석은 그러니까 「교양과 무질서」(아놀드)에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지요.

주:아놀드가 인생(Life)이라 한 것을 김동석이 「생활」이라 읽었던 것. 독일 관념철학에서 말하는 삶(Leben)과 거의 같은 뜻이 아니었겠는가. 『내가 일구월심 갈고 닦은 것은 문학이다. 기능에 응해서 노동하는 것이 가장 양심적이라면 나는 상아탑에서 글쓰는 것이 나로서는 제일 좋은 일』이라고 김동석이 말할 때, 그가 말하는 「생활」이란 관념적인 것이지요. 물론 그는 생활을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로 인식하기 시작하자 좌우익 이데올로기의 갈등현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지요.

객:그러자니 교양으로 몸에 익힌 문학과 현실(생활)의 모순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지식인문학의 최대의 난제가 있었다?

주:네 가지 난제가 한꺼번에 제기된 곳에 해방공간의 위대성이 있었다고 하면 과장일까요.<김윤식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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