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 혁명주장 반문명선언내가 처음으로 테러리스트 카진스키, 일명 유나 바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직업적인 관심에서였다. 즉 그는 이 시대의 한 정서를 대변하는 극단적인 인물로 내가 영화 속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데 중요한 참고가 될 것같았다. 지난 18년간 소포를 이용한 폭탄테러로 미국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는 테러중지를 조건으로 「유나바머 선언: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자신의 논문을 유력신문에 싣게 한 것부터가 기존의 테러리스트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요약되어 우리나라 언론에도 소개된 논문내용은 뭔가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헤매는 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최근 카진스키가 동생의 신고로 잡힌지 얼마 안 되어 그의 반문명선언문 전문이 번역돼 「유나 바머」(박영률출판사간)라는 책으로 나온 것을 알고 나는 즉시 책방으로 달려갔다. 그 책에는 선언문 전문과 18년에 걸친 수사과정, 그리고 한 심리학박사의 유나 바머에 대한 심리분석이 실려 있었다.
대학교수 출신이자 20여년간 숲속 오지에서 은둔생활을 해온 카진스키가 인명을 살상하는 테러를 통해서까지 이목을 집중시켜 공개하고자 했던 논문 「산업사회와 그 미래」의 핵심내용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고도화한 산업사회와 테크놀로지체제에 대한 비판, 그리고 혁명을 통해 그러한 사회와 체제를 뒤엎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그가 좌파주의자들에 대해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으면서, 무장봉기나 정치적인 혁명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와 경제의 혁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보통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데는 사회의 정치적인 구조보다는 경제및 테크놀로지구조가 훨씬 중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테크놀로지의 전위에 선 일부 과학자들에 대해선 인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연구에 몰두할 뿐이라고 비난한다. 결국 그는 테크놀로지 발전의 결과로 인간소외가 극대화해가고 있다며 산업사회를 붕괴시키고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유나 바머의 선언문은 내용의 과격성과 그것을 싣게 되기까지의 부정적인 과정에도 불구하고 산업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한 번쯤 멈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자극을 줄 것같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내면 한 켠엔 유나바머와 같은 심리가 숨어 있지 않을까? 읽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이정국 영화감독>이정국>
◇약력
▲57년 전남 보성 출생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 ▲84년 대한민국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 ▲94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감독상 ▲저서 「구로자와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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