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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근 영사 피살­재구성해본 사건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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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근 영사 피살­재구성해본 사건현장

입력
1996.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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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아파트 도착직후 “비명”/수상한 남자 2∼3명 대기/6층서 처음 습격당한후 3층 피신 흔적/계단 핏자국낭자·이웃주부가 목격 신고최덕근 영사(54)가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사무실을 나선 시간은 평소 보다 조금 이른 하오 6시30분(현지시간)이었다. 날은 이미 스산하게 저물고 있었다.

최영사는 이날 서울에서온 박승덕 연구위원 등 한국표준화연구소 관계자 2명과 시내 한국음식점인 「코리아하우스」에서 저녁약속을 해놓고 있었다. 최영사는 동료 최용삼 영사와 함께 사무실에서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최영사가 「코리아하우스」에 도착한 시간은 하오 7시가 채 못돼서였다. 최영사 일행이 도착했을 때 식당에는 이미 서울에서 온 손님 2명과 비즈니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초대된 블라디보스토크 공대총장을 비롯해 대학관계자 및 러시아인 통역 등 4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식사는 하오 7시께부터 하오 8시30분께까지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자리가 파하자 각자 헤어졌고 최영사는 현지 고용한 러시아인 운전사가 모는 자신의 도요타 승용차를 타고 시내 외곽 루스카야 55번지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로 향했다. 최영사가 자신의 아파트에 도착한 것은 하오 9시께였다. 최영사는 이 아파트의 7층에 살고 있었으며 6층에는 동료인 이우성 부영사가 살고 있다.

최영사가 도착하기 직전, 같은 아파트에 사는 러시아인 주부가 외출했다 돌아와 1층 현관 부근에 서 있었다. 그는 계단을 오르려다가 계단쪽의 어둡고 후미진 곳에 수상한 남자 2∼3명이 서성이는 것을 보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최영사가 도착하는 것을 보고 최영사의 뒤를 따라 올라갈 생각이었다.

최영사가 먼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지 1분여쯤 지나 그녀가 막 계단을 오르려고 할 때 위층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이어 고함소리, 계단을 후다닥거리며 오르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인은 곧바로 전화로 인근 러시아 파출소에 상황을 신고했고 5분여쯤 후 앰뷸런스에 이어 러시아인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최영사는 건물 3층에서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발견 당시 최영사는 둔기로 강타 당한 듯 후두부가 주먹만하게 함몰된 상태였고 엄청난 양의 피를 쏟고 있었다. 머리 외에도 오른쪽 옆구리 부분에 날카로운 송곳에 찔린 것으로 보이는 2군데의 자상이 발견됐다. 최영사의 소지품인 여권 지갑 현금 등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계단에는 피습 이후 최영사가 흘린 핏자국이 낭자했는데 6층부터 혈흔이 발견됐다. 6층에서 3층에 이르는 계단의 혈흔이 점점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6층에서 1차 피습을 당한 후 아래층 쪽으로 피신하다 3층에서 후두부에 결정적 가격을 당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유일한 목격자인 러시아인 주부는 현장에서 목격한 2∼3명의 수상한 남자들이 동양인인지 러시아인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장인철 기자>

◎블라디보스토크 현황은/92년 개방후 범죄 폭증 “치안 사각”/상사원 등 200여명 체류… 목사 등 피살 전례/북 벌목공 등 파견 곳곳에 신변위협요소

최덕근 영사가 피살된 블라디보스토크는 92년 개방 이후 1년동안에만 범죄율이 50% 이상 증가한, 치안상태가 대단히 불안한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체류하는 한국인들도 지난해 12월 사업가와 목사 1명이 피살되는 등 각종 범죄에 피해를 입고 있다. 특히 마피아가 창궐하고 북한 벌목공 등의 탈북상황이 계속됨에 따라 현지 한국인들의 신변안전 문제가 제기돼 왔다.

현재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현대·대우·LG·삼성 등 종합상사 4개를 비롯해 고합·대한항공 등 일반 상사 7개, 중소기업 10개, 선박수리지점 7개의 직원 50여명과 가족, 선교사, 유학생 등 2백여명이 체류중이다. 체류 한국인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총영사관이 개설된 것은 사할린·연해주 등지의 한인교포 7만여명이 있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옥차브르가 25번지)은 92년 10월부터 업무를 개시했으며 이석곤 총영사와 최용삼 영사, 이우성 부영사 등 공관원 6명이 상주해왔다.

한편 북한은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총영사관을 개설해 놓지 않았으나 대신 건설대표부를 두고 있다. 북한은 그러나 인근 나홋카에 총영사관(16명), 아르촘에 농업대표부(6명), 하바로프스크에 경제대표부(10명) 및 임업대표부(10명)를 각각 개설했다. 특히 북한은 이 일대에 벌목공과 건설·농업근로자 1만여명을 파견하고 있으며 최근 이들의 탈북사태가 급증하자 단속 요원들을 증원, 탈북자와 단속요원들간의 추격전 때문에 러시아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지배한다」는 뜻을 가진 군사도시로 스탈린 집권이후 기밀보호를 위해 외부와 차단돼왔다. 인구는 63만여명(군병력 제외)이고 지난 32년이후 주둔하고 있는 태평양함대사령부는 엄청난 전력을 갖추고 있다.<김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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