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은 많은 사람들에게 한기가 서린 추석이었다. 북의 잠수함침투사건때문이 아니다. 지지난해 추석연휴때 세상을 경악케한 지존파사건같은 게 터져서 그런 것도 아니다. 여기저기서 목을 죄는 감원의 위협에서 오는 마음의 한파때문이다.대기업 금융분야 중견관리자인 Y씨는 고향에서 추석연휴를 보내고 서울로 돌아온뒤 불안·우울증세가 더 심해졌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최근 「회사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유념해두라」는 사장의 아리송한 말이 「명퇴」의 신호라고 생각하고는 불안감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에 부모형제들을 만나 회포를 풀면 기분이 전환되겠지 하는 기대도 빗나갔다. 불편한 심기를 읽은 가족간에 어색한 대화만 오가다 우울증만 깊어지고 말았다.
석유화학계열기업의 부장자리에 있는 Y씨의 동생은 감원대상의 암시를 받고는 초조해하다가 이젠 병원진찰을 받아봐야 할 단계의 심불안증에 걸렸다. Y씨네의 한가위 가족마당은 냉기가 감돌았다. 가족윷판도 깨져버렸다. 심경이 날카로워진 동생이 취중에 「잡고 잡아먹히는 살벌한 장난은 집어치우라」며 판을 뒤집어엎었기 때문이다.
Y씨 형제는 모두 회사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고지식한 샐러리맨이다. 남들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못하고 골프와도 담을 쌓고 오로지 회사일에만 매달려왔다. 이들은 거품경제와 불황을 조장한 장본인들이 누구인데 왜 우리가 「거품」이 되어야하는가고 반문한다. 계절은 풍년이라는데 추석을 스산하게 보내고 서울로 돌아온 이들 형제의 가슴은 답답하고 흉흉하기만 하다.
Y씨 형제처럼 요즘 심적불안의 스트레스에 걸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상실의 우려에서 오는 「실직증후군」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최근 이 증후군에 감염돼 불안·우울증, 좌절·무력감을 호소한다. 소화불량 두통 신경쇠약등 신체이상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가을들어 병원의 정신·신경과를 찾는 이들이 예년의 두배이상에 달하고 있는데 다수가 실직증후군이라는 것이다. 또다른 심각한 사회적 병리가 번지고 있음이다.
실직증후군의 확산은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킨다. 풍성한 결실의 계절에 마음이 황량해진 사람들. 이들은 가정과 사회의 안정을 위해 실직증후군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을 원치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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