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 하리 그 신비를 벗긴다”「동양적인 헤어스타일, 살색의 보디스타킹, 은빛 브래지어」
미모와 능력을 겸비, 여자스파이의 전형으로 불리는 「마타 하리」의 생애가 최근 다시 호사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마타 하리 사후 80주년을 1년 앞두고, 27일부터 독일 뒤셀도르프 국립박물관에서 그의 삶을 담은 전시회가 열리게 된 것이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그의 유품들은 12월부터는 고향인 네덜란드 라우바르덴의 프라이에스박물관에서 영구 전시된다.
프라이에스박물관 게르트 구프만스 관장에 의해 마련된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가 1905∼15년 댄서로 활약할 당시의 관련 신문 기사와 사진, 카드, 연애편지 등이 처음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구프만스 관장은 『이번 전시회는 그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신비감을 다소나마 벗겨주겠지만 또한 스파이와 그의 매력을 알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어로 「여명의 눈동자」라는 뜻의 마타 하리는 1차 세계대전 때 애인 지오코모 푸치니 프랑스 전쟁장관에게서 연합국 비밀정보를 빼내 독일에 수시로 제공했다. 그는 서부전선에서 5만명의 연합국병사들을 숨지게 한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프랑스군에 체포돼 1917년 처형됐다.
그의 삶은 전쟁이 끝난뒤 그레타 가르보, 마를렌 디트리히, 실비아 크리스텔이 각각 주연한 영화와 뮤지컬 연극 오페라 등으로 일반에게 알려졌다.
삼 와게나르의 마타 하리 전기도 그의 삶을 알리는데 일조했다. 전기에 따르면 1876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본명이 마가레타 젤레 맥레오드인 마타 하리는 「남작」이라는 별명을 가진 부유한 모자점주인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집안의 몰락에 이은 정략결혼, 이혼으로 급전 직하했다.
18세때 「젊은 여성 구함」이라는 신문광고를 낸 40세의 네덜란드 장교를 만나 결혼, 남편을 따라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신혼을 보냈다. 그는 남편과 이혼한뒤인 1905년 3월 파리에서 무용수로 데뷔, 자바시절 어깨너머로 배운 요염한 누드춤을 선보이며 유럽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극장, 파리오페라극장과 베를린 메트로폴 극장에서 춤을 추던 그는 1차대전의 발발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매춘과 간첩활동에 뛰어 들었다. 결국 41세때인 1917년 프랑스군에 의해 간첩혐의로 체포돼 총살당했다.
이번 마타 하리 유품 전시회는 프랑스 문서보관소가 재판기록 등을 공개하지 않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많은 부분을 어느 정도 밝혀줄 것이란 점에서 기대를 모으게 한다.<권대익 기자>권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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