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 작년 3,047회 유료보다 많은 공짜관객/유명연주자 모셔오기 개런티 상승만 부채질/이력서용 공연 판치고 학력만능주의 풍조까지/화환만 즐비 집안잔치꼴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펴내는 문예연감에 따르면 지난 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클래식음악회는 3,047건. 하루 평균 8.4회나 됐다. 이는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문화수요가 폭발한 88년의 2,266건과 비교해도 35% 가량 증가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양적 팽창이 반드시 질적 향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악 성악 오페라 등 다른 음악회는 다 늘었는데 작곡 발표는 거꾸로 93년 92건에서 95년 67건으로 줄었다. 음악소비는 폭증하는데 생산활동인 창작은 뒷걸음질치는 현실은 미래의 전망을 흐리는 것이다.
청중을 보자. 러시아연주단체 카메라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5월 예술의 전당 음악회. 객석의 절반이 못 차는 1,121명의 관객 중 14명만이 표를 사서 들어왔을 뿐 나머지는 초대였다. 유료보다 초대관객이 훨씬 많은 현상은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일반적이다.
관객층이 얇고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공연기획자들은 일단 청중 동원에 유리한 외국의 유명연주자 모셔오기에 급급, 과당경쟁에 따른 개런티 상승을 일으킨다. 오페라 스타부부로 잘 알려진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와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의 경우 여러 기획사가 서로 초청교섭에 나서는 바람에 개런티가 12만달러까지 올라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럽에서 받는 개런티의 10배가 넘는 금액이다. 그들의 내한이 확정되면 그 비용은 결국 비싼 표값으로 청중에 넘겨져 상당수는 관람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악순환의 계속이다.
내실 없는 공연, 헛 관객을 만들어내는 원인은 무엇보다 공연자 자신의 책임이 크다. 올 여름 갑자기 개인 무용발표회가 늘어났다. 서울과 지방 모대학에 교수자리가 났다는 소식에 교수직 지망자들이 임용의 판단근거가 되는 실적을 제시하기 위해 무대를 마련하느라 벌어진 소동이었다. 음악계도 사정이 비슷하다. 음대의 실기교수들은 몇 년에 한 번 이상 연주회를 해야 재임용과 승진이 가능하다. 그런데 공연내용과 무관하게 일정 형식요건을 갖추면 되기 때문에 많은 경우 「때우기식」 음악회가 되고 만다. 대충 하는 공연이 좋을리 없고 좋은 관객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오페라 출연 성악가가 표를 대량 구입하는 조건으로 무대에 설 기회를 얻는다거나 독주자가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 이상 돈을 내고 오케스트라등 단체와 협연하는 예가 많은 것도 잘 알려진 바이다. 공연기획자들은 그런 방법으로 제작비를 건지고 연주자는 경력을 만든다. 그 결과 실력이 아닌 돈과 교제력에 의해 무대경력이 만들어지고 신인들은 설 자리를 찾기 힘든 부작용이 생긴다.
음악평론가 탁계석씨는 이러한 부실 공연의 원인으로 학력만능주의를 꼽는다. 연주력과는 상관없이 어디서 공부했고 교수냐 아니냐가 중시되는 풍토에서 학교에 발 들여놓기가 일차 관심이 되다보니 무대는 실적쌓기용 통과의례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유학을 마친 신인의 귀국무대 팸플릿을 보면 프로그램보다 학력과 경력 소개가 중심이다. 「간판」이 실력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학교 채용에 필요한 「이력서」로는 유용하다.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은 전체 대관의 절반 이상을 그러한 귀국무대가 차지, 공연장 부족현상을 부채질한다. 대관비 등으로 최소 수백만원을 들여 마련되는 귀국공연 관객은 거의 100% 초대받은 친지다. 새 얼굴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이는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 집안잔치로 끝난다. 공연 뒤 리셉션과 곧 바로 쓰레기장으로 가는 줄줄이 늘어선 화환이 썰렁함을 치장할 뿐이다.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 조성진씨는 공연의 질을 높이는 것만이 공연문화의 거품과 허례를 없앨 최상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관객은 냉정하다』면서 『참된 공연문화를 가꿀 근본 책임은 공연예술가들 자신에 있다』고 강조한다. 오직 실력만으로 평가하고 평가받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탁계석씨는 간판과 포장을 벗기고 『음악 그 자체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음악회는 많지만 음악은 없다. 공연은 많지만 공연다운 공연은 없다. 가짜음악회, 가짜 공연은 계속된다. 허깨비의 잔치, 비극이 따로 없다.<오미환 기자>오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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