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특히 그 중에서도 한국사회에서의 언론의 힘은 신비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하다. 언론에서 일제히 대대적으로 거론하면 그 문제가 지금 사회에서 가장 큰 일인 것처럼 국민 모두가 입을 모아 그 일을 얘기하고 관계기관이 입장을 발표하고 그러다가 잠잠해지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마치 그 문제가 언제 있었냐 싶게 잦아든다. 그때 그때의 중요한 사회이슈가 있고 이를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주임무이긴 하나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의 해결추이를 끈기있게 주시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는데 언론이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리라.○근시안적 생각들
금년 여름 내내 국민들의 입과 귀를 모았던 시화호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 가고 있는가. 짬을 내어 찾아가 본 시화호에는 여전히 검은 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더 이상 물이 들어오지 않아 이제는 갯벌이 아닌, 예전엔 갯벌이었던 땅은 풍성한 물기를 잃고 갈라진채 다만 예전의 흔적으로서 굴껍질이 잔뜩 달라붙은 바위만을 떠받치고 있었다.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시화호의 외해는 시화호에 비해서는 그래도 푸른 빛을 띠고 있지만 우리나라 본연의 바다색인 쪽빛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한때 사람들로 흥청거렸을 횟집과 매립으로 인한 땅장사에 희망을 품었던 부동산들은 마치 폐가처럼 빈 집으로 썩은 시화호의 풍경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방조제 바깥 외해의 갯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꼼지락거리며 기어다니는 게와 뚫린 구멍으로부터의 숱한 갯벌 생명의 소리가 들렸을 그 곳에서도 애써 찾아야 간신히 생명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시화호문제가 본격화한 것은 더 이상 오염을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의 포화상태에 이르러 수자원공사가 무단방류를 시도한 것이 한 방송사에 의해 보도되면서부터이다. 이후 청와대의 특별지시, 주민들의 대책요구, 환경단체의 대대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관계기관은 홍수의 위험을 핑계로 몇 차례의 방류를 실시하여 1억톤 이상의 오염된 물을 아무런 대책없이 서해바다로 흘려 보냈다. 무단방류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과 지역주민들을 경찰서에 가둬놓고까지 흘려보낸 시화호의 물이 서해로 흘러드는 광경의 사진은 차라리 공포였다. 생활하수와 인근 시화공단의 오폐수로 뒤범벅이 된 거품의 거대한 물줄기가 푸른 서해바다를 가르며 흘러드는 사진을 보았다면 시화호의 방류가 바다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시화호에는 이례적으로 물새들이 많이 날아들고 있다고 한다. 오염물질이 밑에 깔려 산소부족으로 물고기들이 표면에 떠오르는데 이 물고기를 잡아 먹기 위해서라고 한다. 오염된 물에 사는 물고기들을 잡아 먹은 새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게 되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닐 것이다. 뻔히 예상되었을 이러한 결과를 보면 매립되는 땅을 갖고 장사를 하고 공장을 짓고 집을 지을 생각을 한 우리 인간네들의 생각이 한심스럽고 서글플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환경문제가 피해보상문제를 중심으로 압축되고 있다. 시화호의 방조제공사로 인해 피해를 입은 농어민들의 문제도 매우 절실하다. 그러나 보상이란 지극히 경제적이고 인간중심적인 발상에 근거한다. 개인이 얼마간의 손해를 입었는가가 관심의 초점이다. 주민들이 입은 손실은 막대하리라. 그러나 그것에는 지역주민들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고향을 등져야 하는 뿌리깊은 상실감에 대한 고려도 있을 수 없고 오염으로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는 드러날 질병에 대한 고려도 있을 수 없다.
○피해는 모두에게
더불어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은 특별히 어떤 개인에게 소속되지 않은 자연이 입은 엄청난 손실에 대한 보상은 얼마인지도 모르고, 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말없는 자연인데다 그로 인한 피해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우리 모두에게 돌아오는 것이 환경문제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한 번 잘못된 일은 어린아이도 다시 하지 않는 법이다. 앞으로 진행될 정부의 간척사업계획은 환경을 가장 최우선에 두고 재검토되어야 한다.
바다와 갯벌은 생태계의 보고이며 인류의 시원이다. 아직 우리 인간들은 바다가 얼마나 무궁무진한 생명의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는지 절반도 알지 못한다. 말없이 푸른 그 바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른채 우리는 그 바다 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고 갯벌에서 조개를 캤으며 이제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그 바다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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