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원 없이도 이익낸다” 신화창조/업무개혁·원가기획운동 1년여만에 탈침체전경련의 내년 임금총액 동결발표를 계기로 국내기업계는 불황돌파를 위한 내핍경영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이 자구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명예퇴직 등 감원바람은 고용불안으로, 임금동결은 노사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정부 기업 모두 묘안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세계 초우량기업들은 불황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세계 일류기업들도 인력감축 원가절감 구조개편 등 다양한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도 하고 재기에 실패하기도 했다. 불황의 늪에 빠진 우리 기업에 도움을 주고자 선진국 기업들의 불황극복 사례를 시리즈로 소개한다.<편집자 주>편집자>
「감원은 없다. 그러나 원가를 낮춰라」.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내세운 불황극복 모토이다. 도요타는 90년대들어 일본경제에 부풀어오른 거품이 빠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2차대전후 최악의 불황에 따른 내수 부진속에 사상 초유의 엔고로 수출마저 급감했고 급기야 92년에는 적자에 직면했다.
이에 도요타는 92년말「엔고및 불황 돌파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비상경영의 핵심은 인력과 조직, 생산현장에서의 대대적인 합리화대책을 통한 원가절감. 「마른 수건도 다시 짜자」는 구두쇠 작전으로 86∼87년의 엔고를 극복한 바 있는 도요타가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비상대책위는 『일본은 습도가 높기 때문에 아무리 꽉 짠 수건이라도 내버려두면 습기가 찬다』며 80년대말이후 도요타 곳곳에 깊이 스며든 거품제거에 나섰다. 연간 매출 1,000억달러(한화 80조원)의 초대형 기업이 단 1엔이라도 아끼자며 7만2,000여명의 근로자들을 쥐어 짜기 시작했다.
도요타는 그러나 이번에 일본기업의 전통인 종신고용원칙을 고수하며 색다른 인력감축을 시도했다. 업무개혁(BR;Business Reform)으로 불리는 이 운동 전개로 도요타는 단 한명도 해고하지 않은채 인력감축과 생산성 향상의 이중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BR의 타깃은 사무직. 우선 전부서에 걸쳐 기존 인원의 20%를 빼내고 강제로 인원 10%의 작업분량에 해당하는 시간단축을 추진하게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인원의 70%로 기존업무를 처리할 수 밖에 없게 몰고 간 것이다.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던 불평은「종신고용보장」으로 수그러들었고 인원이 부족한 만큼 우선순위가 낮은 일은 저절로 사라졌다. 보고를 위한 보고같은 필요없는 업무와 시간낭비가 줄어들었다. 문제는 부서에서 빼낸 20%의 인력. 도요타는 이들을 프로젝트팀에 투입했다. 부문 부서 및 전사 등 3개 프로젝트팀은 기존 업무의 재검토는 물론 신규 프로젝트를 전담했다. 예전에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때 먼저 부서를 만들고 사람을 새로 채용했으나 기존 인력 활용으로 조직의 슬림화와 업무의 체계적 재검토를 동시에 달성했다.
프로젝트팀의 제안으로 전력요금 절약을 위해 근무체제를 변경, 전기요금이 싼 토요일 일요일에 근무하고 평일에 휴무하는 새 제도가 도입됐고 단 하루라도 자금이 불필요하게 사내에 머물지 않도록 「제로 자금」제도 시행됐다.
기대이상의 효과를 거두자 생산직도 프로젝트팀에 가세시켜 원가기획운동을 주도케 했다. 비용에 이윤을 보태 판매가를 결정하는게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잘 팔릴만한 가격을 미리 책정하고 여기에 맞춰 비용을 줄여 나갔다. 이를 위해 생산라인을 개체하고 생산현장에 3∼5명의 팀제를 도입했다. 전분야에서 차출된 프로젝트팀은 어디서 비용을 줄여나갈지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도요타는 이같은 BR와 원가기획운동을 펼친지 1년여만인 94년 5월 세계에서 가장 싼 4륜 구동의 소형 레크리에이션 자동차(RV) RAV4를 시판했다. 2,000㏄에 가격은 159만8,000엔으로 당시 저가를 내세워 세계RV시장을 석권하던 일본 스즈키의 1,600㏄급 에스쿠드(164만엔)에 비해 훨씬 저렴했다.
이렇게 싼 값을 받고도 이익을 낼 수있는데 대해 세계 자동차업계는 경악했고 도요타의 이차를 개발한 사람은 「악마」로 불렸다. 그러나 도요타의 비결은 간단했다. 미리 정해진 판매가에 맞추기 위해 기존 모델의 부품을 40%나 갖다 쓰고 부품공용화로 들어간 부품수를 동급 모델보다 30% 줄였으며 비용 절감을 위해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다.
비틀거리던 도요타는 RAV4를 시판한 94년을 기점으로 부활했다. 매출도 순익도 다시 80년대말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불황기라도 원가절감만 하면 감원없이 얼마든지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한 도요타는 이제 엔저시대를 맞아 순풍에 돛단듯 세계 최고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이백규 기자>이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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