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불라 전 대통령 공개처형【카불 외신=종합】 아프가니스탄을 접수한 회교무장반군 탈레반 임시정부는 29일 회교국가를 운영할 새 정부를 곧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영 파키스탄 방송은 이날 탈레반 지도자 물라 모하메드 랍바니 회교과도 정부 평의회 수반의 말을 인용, 축출된 부르하누딘 랍바니 대통령 등 정부지도자들은 새 정부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탈레반 반군은 27일 카불을 점령한 뒤 회교법을 선포하고 과도정부를 구성하는 한편 80년대말 구소련의 지원하에 공산정권을 이끌었던 나지불라 전 대통령을 체포, 공개처형했었다.
한편 로버트 홀 유엔 아프가니스탄 특사는 이날 탈레반 회교반군으로부터 협조약속을 받아냈으나 유엔 보호하에 있던 나지불라 전 대통령을 처형한데 대해서는 아무런 사과를 얻어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탈레반 정권 앞날은/이란·러와 적대 험로 예고/민심지지 불구 막강군벌들 행보 변수
아프가니스탄의 회교 무장반군 탈레반이 27일 수도 카불을 비롯한 국토 대부분을 점령한 뒤 회교국가 출범을 선포했다. 부르하누딘 랍바니 대통령 등 정부군은 별다른 저항도 못한 채 국경지역으로 도주했다. 이로써 아프가니스탄은 최근 4년만에 3번째 정권이 등장하게 됐다.
물라 모하마드 랍바니와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 등이 이끄는 탈레반이 이처럼 쉽사리 카불을 장악할 줄은 서방 정보조직도 미처 예상 못했다. 불과 2년전 오마르의 주도하에 남부 칸다하르지역 신학생들이 결성한 회교원리주의 게릴라 조직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초기에는 파키스탄 접경에서 무역상들을 강탈한 돈으로 무기를 구입해야 했을 정도로 기반이 취약했었다.
탈레반이 거대 군사조직으로 급성장한데는 인근 파키스탄으로부터 상당액의 군비와 무기를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탈레반 소속 게릴라 상당수가 파키스탄에서 교육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민심도 부패한 랍바니 정권보다는 회교원리주의에 충실한 탈레반을 지지했다.
6인 집행위원회를 정점으로 과도정부를 구성한 탈레반이 내건 통치 목표는 회교지상주의 사회건설이다. 회교 율법인 샤리아를 전면 시행, 주류·마약의 판금은 물론 여성의 얼굴을 차도르로 가리게 하고 여학교를 폐쇄하며 여성의 공직참여를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탈레반은 또 친소파였던 나지불라 전 대통령 등 전공산정부 관리들을 처형, 「과거 청산」작업에도 나섰다.
탈레반이 집권에는 성공했으나 내전을 종식시키고 난국을 수습할지는 속단키 어렵다. 정부군이 카불 인근에서 탈레반과 교전을 계속하고 있는 데다 지방의 막강 군벌들이 탈레반의 통치노선에 순순히 따를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아파 회교도 중심의 이란은 이웃 아프가니스탄에 수니파 중심의 탈레반 정권이 등장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회교원리주의국가의 탄생에 회의적 시각인 미국 등 서방국과의 관계회복도 낙관할 수 없고 과거 나지불라 정권을 지원해온 러시아는 적대적 감정을 보이고 있다.
89년 구소련군 철수이후 아프가니스탄은 계속된 내전으로 약 3만여명이 숨졌으며 카불이 80%나 파괴되는 등 황폐화했다. 탈냉전시대에 급부상한 민족주의와 회교원리주의가 「피의 꽃」을 피운 것이다.<이상원 기자>이상원>
◎탈레반은 어떤 조직/회교원리 학생단체 조직·지도부 등 베일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권력주체로 떠오른 탈레반은 회교원리주의 학생단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조직이나 지도부의 면면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신비의 조직」이다.
현지어로 구도자·탐구자·학생을 의미하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내전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94년 10월. 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가 파키스탄과의 접경지역인 남부 칸다하르주에서 과격 회교학생운동가들을 규합, 무장투쟁 조직을 결성하면서 부터다. 오마르는 80년대 구소련 점령기 독립투쟁에서 한 눈을 잃은 「애꾸눈 전사」로 나이는 30대로만 알려져 있다.
탈레반의 구성원은 「마드라샤」란 회교학교에 다니던 수니파 원리주의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지도부는 오마르를 비롯해 임시정부인 6인위원회 의장 물라 모하마드 랍바니(38), 모하마드 압바스 등 과거 대소련 무장 독립투쟁의 베테랑들이 차지하고 있다.
탈레반이 출범 6개월만에 파죽지세로 국토의 절반을 장악하고 2년만에 수도 카불을 장악할 수 있었던 군사력의 배경도 미스테리다. 탈레반은 퇴역장교, 전회교전사(무자헤딘)로 구성된 병력 2만5,000여명과 탱크 수백대, 미그전투기 10여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군자금 지원국은 파키스탄이 유력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을뿐 정확한 것은 오리무중이다.<배연해 기자>배연해>
◎공개처형 나지불라/소후원 아프간 철권통치 「카불의 도살자」
침략군의 후원아래 아프가니스탄을 6년 넘게 철권 통치했던 나지불라 전 대통령(49)이 실권 4년반만에 결국 동족의 손에 처형됐다.
27일 수도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 회교 학생무장단체는 카불의 유엔사무소 구내에서 사실상 연금상태에 있던 나지불라와 동생 샤푸르 아마드자이를 교수형에 처한 뒤 대통령궁 정문의 교통통제소앞에 매달았다.
골수 공산주의자였던 나지불라는 79년 구소련군 침공으로 성립된 친소공산정권하에서 악명 높은 하드 비밀경찰의 책임자로 활동하다 86년 실권을 장악하고 87년에 카불에서 개최된 전통적인 로야 지그라(대의회)에서 7년 임기의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는 92년 초 회교반군게릴라 무자헤딘의 공격으로 카불함락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망명을 보장하겠다는 아프간주재 유엔대표의 중재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나지불라는 그러나 이 해 4월 16일 공항으로 가는 도중 체포되어 연금됐고 그를 「구출」하려는 유엔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카불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던 나지불라는 편안함을 주면서도 필요에 따라 무자비해지는 독재자적인 성격으로 「냉혹한」 「카불의 도살자」로 불려왔다.<윤태형 기자>윤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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