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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지키기(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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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지키기(장명수 칼럼)

입력
1996.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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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온 나라가 전쟁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17일 밤 강릉 해안에서 침투한 공비들은 집단 자살과 우리 군·경에 의한 사살로 대부분 사망했으나, 잔당 추적이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다.강릉 인근 청학산 칠성산 일대에서는 베트남 전쟁을 방불케하는 수색작전이 벌어지고, 신문 방송들은 시시각각 전황을 보도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몇명을 더 잡았느냐』고 서로 묻고 있다. 바로 1년전 「사랑의 쌀」을 실은 배들이 북한으로 떠나며 동포애를 다지던 동해안은 공포와 충격으로 얼어붙어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민의 키와 몸무게가 줄어들고 있다는 북한, 심각한 경제난으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북한, 우리에게 식량지원과 자본투자를 요청하던 북한이 잠수함에 무장공비를 태워 남파시켰으니 우리가 경악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교의 광신도들처럼 집단 자살한 처참한 시체들, 산으로 쫓기며 끝까지 저항하는 잔당들에게 우리가 몸서리 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충격이 집단 히스테리로 치닫지 않게 경계해야 한다. 한총련 사태에 이어 터진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북한에 대한 여론을 극단적인 강경론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여론이 고조되면 정부는 이른바 공안정국의 유혹에 빠지고, 대북정책은 불필요하게 후퇴하고, 어느날 갑자기 180도 반전하여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그동안 해이해진 대북인식을 바로 잡고, 북한의 실체를 재인식 하고, 모두 제자리를 확실히 지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발각되고 확대된 것은 북한 잠수함이 좌초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그와 유사한 간첩활동을 계속해 왔고, 이번에 내려온 잠수함도 며칠씩 동해안에 머무르며 활약하다가 좌초했다. 그런 사실을 인정한다면 지금같은 흥분을 빨리 가라앉혀야 한다.

북한이 아무리 밉더라도 그들의 굶주림을 끝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북한이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망나니 형제라는 현실과 함께 그들에 대한 지원을 피할 수 없다는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망나니를 다루는 전략이지 적개심과 흥분이 아니다.

군이 해안을 철통같이 지켰다면 지금같은 난리는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시종일관 흔들림 없는 대북 자세를 유지했다면 안보의식이 이처럼 허술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 갑자기 변한 것은 하나도 없고, 우리가 새삼 배신감을 느끼거나 충격받을 일도 없다. 북한은 자기들의 노선을 변함없이 밀고 왔을 뿐인데, 우리가 착각했던 것이다. 그동안의 착각을 부끄러워 하면서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자기 일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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