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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6.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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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동경)도 다나시(전무)시의 연립주택 2층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 문태복씨(73)는 한국사람이 방문한다고 하면 우선 부인에게 한국음식 준비부터 시킨다. 찾아주는 것만도 고마워 서투른 솜씨지만 온갖 정성을 다하도록 한다. 그리고 주위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불러 감격을 같이 나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들은 바로 일본군에 끌려나가 연합군포로를 감시하다 전후 포로학대죄로 연합군 군사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B·C급 전범」이라 찾아주는 한국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동진회」란 모임을 구성, 한곳에 모여 살며 억울함이 풀릴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현재 이들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다. 일본은 그들의 전쟁책임을 대신 짊어진 이들을 한국인이라고 거들떠 보지 않는다. 한국정부는 「일본을 위해 일하다 전범이 됐다」며 관심 밖에 두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사람이 방문한다고 하면 혹시나 자기들의 처지를 이해받는데 도움이 될까 마음부터 들뜬다. ◆문씨 등 7명은 최근 일본정부를 상대로 1억3천5백만엔의 보상과 사죄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가 기각당했다. 「원호조치가 바람직스럽다」고 하면서도 「법률에는 국적조항이 있어 보상청구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판결 이유였다. 지난 반세기동안 가시밭길을 헤쳐온 결과가 고작 이것이었다. ◆외신은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태면철도가 복원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이 철도는 바로 문씨 등이 일본군 지시로 연합군 포로를 이끌고 건설한 「죽음의 철도」다. 역사의 아픔을 잊은 듯 철도는 복원된다고 하지만 이들의 명예는 언제쯤이나 복원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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