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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의 양심(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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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의 양심(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6.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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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회의원의 전비서가 지난 총선에서 선거비용을 법정액수보다 초과사용했다고 발설하더니 얼마뒤 그 발설내용을 부인하는 편지라는 것이 공개된 채 돌연 외국으로 잠적했다. 의혹은 더 큰 의혹으로 번지던 참에 공비침투 사건으로 잠시 가려지기는 했지만 소동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그 국회의원의 선거법 위반여부를 떠나서, 발설 내용이나 부인 내용의 어느쪽이 사실이든간에 상관없이, 부인 편지가 진짜라면 어느 한쪽이 사실이 아닌 것이 확실한 바에야, 이렇게 함부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국민을 놀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있어도 괜찮은 것인지, 이것이 개탄스럽다. 제멋대로 나팔을 불어 사회를 혼란에 빠뜨려 놓고 슬쩍 숨어버리는 짓거리는 공공건물에 대한 방화행위나 다름없고 그런 사람은 공적으로 지탄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그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해프닝 정도로 웃어넘기려고 한다.

이렇게 우리 사회가 관대해진데는 소위 「양심선언」이란 것에 미혹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전비서가 자기 진영의 「비밀」이라는 것을 터뜨리자 양심선언이라고들 했다. 그 비밀이라는 것이 사실로 확인도 되기 전에 무조건 폭로행위 자체만으로도 일단 양심으로 통용되는 세태에 우리는 익숙해져 왔다. 부정이 은폐되고 정의가 숨죽인 채 양심이 귀하던 시대의 유풍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양심선언은 영웅시 되어오고 있다. 그것이 사실로 밝혀질 때는 의인의 출현처럼 반긴다. 폭로는 정의의 분출이요 공분의 발로로 평가되고 위기의 사회를 구출하는 용기로 격려된다. 그래서 양심선언이라면 고무찬양하고 장려하는 듯한 사회분위기가 이어져 온다.

그렇다면 양심선언은 그것이 사실이기만 하면 미덕인가.

아무리 사실이더라도 그것이 순수하고 진실한 것이 되자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라야 한다. 그 용기에 감복하자면 무슨 대가를 바라서는 안된다. 그러면 그 양심은 불순해진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양심선언들은 처음부터 어떤 반대급부를 기대한 것이거나 결과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허상이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또 그렇다면 진실한 양심선언은 모두 정의인가.

진실한 양심선언은 사회의 공익에 기여할 것이다. 한 사람의 양심이 사회를 구휼할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양심선언의 뒷면은 배신이다. 자신이 소속한 집단이나 개인적인 인연을 배반하지 않고는 양심선언을 할 수 없다. 그 배신은 사회의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 그 불신이 가져오는 폐해는 양심선언이 가져다주는 복리에 비할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은 양심선언이 하나도 없는 세상보다 훨씬 위태롭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비밀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 가운데는 정의에 어긋나고 사회에 유해한 비밀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비밀들을 다 까발리기로 하면 사회의 조직은 와해된다. 사회는 지탱할 힘을 잃는다. 모든 사람이 다 양심선언을 하고 나서면 모든 사람이 다 피해자가 된다. 아무에게도 이익이 안된다. 어떤 개인도 멀쩡할 수 없고 어떤 집단도 성할 수 없고 따라서 어떤 사회도 안녕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의 가장 큰 약점중의 하나가 신의의 결핍이다. 신용과 의리가 없다는 것은 신실하지 못하다는 말이요 배신을 잘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삐걱이게 하는 요인이다. 가뜩이나 이런 마당에 양심선언이 어느 경우에나 칭송되면 더욱 신의가 발을 붙일 땅을 잃기 쉽다.

시저는 어떤 적장이 자기 나라를 배반하고 기밀을 가지고 왔을때 『그의 반역은 고마우나 그 사람은 증오한다』고 말했다. 배반이 아무리 이익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인간이 존경스러운 것은 아니다.

양심선언을 보다 명쾌히 판정하고 있는 것은 「논어」의 한 구절이다.

『남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을 정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미워한다(악이위직자)』<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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