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독일가곡연구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기념연주회를 했다. 평소의 모습과 달리 많은 청중이 객석을 메워 분위기는 사뭇 가벼운 흥분감마저 돌았다. 상업성에 찌든 문화여건 하에서도 순수성을 지키려는 노력에서 고독한 작업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이 맑은 샘물처럼 촉촉히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그런가 하면 스위스 출신의 소프라노 에디트 마티스가 내한해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순수가곡에서만 느낄 수 있는 충만한 예술에너지를 전달, 청중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이 두 음악회는 오늘날의 외화내빈 겉치레 공연문화에 대한 신선한 반격 같아서 반갑게 여겨졌다. 내면적 음악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값진 연주회였다.
우리 가곡은 7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면서 크게 활성화해 국민가곡으로 널리 불리게 됐다. 테너 고 이인범 선생이 열창한 김동진의 「가고파」, 엄정행의 「목련화」에다 박판길 작곡 신영조의 애창곡 「산노을」, 조두남 작곡 박세원의 「그리움」, 윤용하 작곡 「보리밭」, 장일남 작곡 「비목」 등 일반의 가슴에 깊이 수놓아진 명곡들이 국민정서를 살찌웠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방송·신문사들이 봄맞이 가을맞이 「가곡의 밤」 개최에 열을 올렸다. 가곡은 오페라 아리아나 기악연주처럼 연주가만의 일방적인 음악 전달이라기보다 청중이 가슴 속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게 함으로써 좀더 직접적인 교감이 이루어지는 장르다.
그러나 한과 슬픔, 그리움을 풀어 마셨던 서정성 높은 우리 가곡이 변화하는 문화층을 흡수하는 데 어떤 적응력을 보여주었는가. 느릿한 템포에다 한결같이 애수조의 가곡만으로는 오늘의 세대를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가곡의 예술성을 고스란히 지키면서도 밝고 경쾌한 가곡이 나와야 겠고 주제 역시 새로운 소재를 선택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여든을 넘긴 노작곡가 김연준선생의 지칠 줄 모르는 창작혼은 우리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다. 갈 곳 몰라 방황하는 현대인의 불안한 정서에 기도 같은 안식을 느끼게 하는 그의 명작 「청산에 살리라」는 시대를 초월한 명곡이 될 것이다. 부와 권세가 있으면 하늘을 날고 호령하고 싶은 세상에 모든 욕심 뒤로 하고 청산을 바라보는 허허로움, 바로 김연준창작의 핵심이다. 「가곡성」 회복을 안타까워 하는 것이 비단 노작곡가만의 염원일까.<탁계석 음악평론가>탁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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