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오 11시 무렵이면 서울 강남 일대에는 다시 러시아워가 시작된다. 택시기사들은 교통체증에 짜증을 내면서 대개 이렇게 주장한다.『이 시간에 차가 밀리는 건 여자들 때문이에요. 주부들이 점심먹고 운동하고 쇼핑하려고 쏟아져 나오거든요. 저 자동차들을 보세요. 모두 여자가 모는 차죠. 차나 작은 가요? 대개 그랜저죠. 도대체 무슨 돈으로 저렇게 살까요』
택시기사들의 말에 편견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에 거리를 메운 자동차들을 대부분 여자들이 운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점심시간에 고급 식당에 가면 식당을 가득 메운 손님들도 모두 여자다. 백화점, 고급 옷가게와 보석가게, 헬스클럽에도 여자들이 넘쳐 흐른다.
남자들이 밖에서 쓰는 술값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안팎에서 그렇게 돈을 쓴다면 그 돈은 대체 어디서 나올까. 어느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상당부분 판공비나 법인카드를 쓴다고 하지만, 그것으로도 설명이 안된다.
과소비뿐이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자녀들을 외국에 유학보내고, 비싼 학비를 송금한다. 그들의 자녀는 유학가서 접시를 닦거나 장학금을 찾아 이 대학 저 대학을 두드리지 않는다. 학비가 얼마나 비싸냐는 것은 문제가 안되고, 명문대학이냐 만이 문제가 된다. 그 집의 공식적인 수입은 월 몇백만원인데, 지출은 몇천만원에 이르고 있다.
그 기이한 현상, 이성을 잃은 과소비의 숨은 이유는 「땀흘려서 벌지 않은 돈」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부가 과소비를 단속해도 「공짜 돈」이 흘러다니는 이상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자기손으로 번 돈이라면 도저히 할수없는 과소비를 「공짜 돈」은 가능하게 한다.
땀흘려 벌지않은 돈은 다 「검은 돈」이라고 말할수는 없다. 그러나 대부분 부도덕하게 모아진 돈일 경우가 많고, 부도덕하지 않았더라도 소비가 지나치면 부도덕한 행위가 될 수 밖에 없다. 공짜로 생기는 돈이니 쓰고보자는 끝없는 소비욕구야말로 심각한 병이다.
고소득층의 소비풍조는 저소득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소득층에서도 자동차를 사고, 외식을 하고, 놀러다니는데 돈을 쓰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하여 집을 산다는 것은 구시대의 사고방식이다.
온국민이 모두 자신의 수입을 넘어서는 소비를 하고 있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온가족이 일하기는 싫어하고 돈쓰기만 좋아한다면 그 집은 어떻게 될까. 과소비의 끝은 결국 파산이다. 불경기라고 야단인데, 각자의 생활에서 거품을 걷어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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