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경쟁을 좀 더 생산적으로 할 수 없겠는가 하는 해묵은 과제가 새삼 돌출되고 있다. 시대도 바뀌고 민주화도 이룩되었으면 과거와 같은 비생산적인 물밑대선 경쟁의 후진적 타성에서 이제 과감히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요 논의들이다. 이같은 논의는 지난 보름동안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사이 여권의 대선주자들에 의한 대선논의가 봇물을 이뤘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멕시코의 집권여당인 제도혁명당의 대선후보선출과정을 연상시키는 이같은 물밑 경쟁은 근본적으로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후보선택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의중을 탐색하기 위해 그리고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공식적인 언행에 주의한다. 아울러 선두주자로 일찍이 부상하면 위험하다는 공통된 인식이 존재한다. 어느 후보가 선두주자로 부각되면 다른 경쟁자들이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시키게 되고 그러면 설사 대통령이 원하더라도 지명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물밑경쟁은 정치의 선진화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후보자들이 대통령직을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을 지 그 능력을 판단하거나 검증할 시간이 없다. 레임 덕이 되기 싫은 현직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다 어느 누구를 선택하면 국민들은 얼결에 주어진 두 세개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 선거는 주어진 선택지 가운데서만 골라야 한다는 점에서 사지선택과 유사하다. 선택지 자체가 좋지 않으면 좋은 선택은 있을 수 없다.
또한 멕시코식 후보선출은 대선논의의 내용에도 영향을 준다. 화합의 논리보다는 배제의 논리, 긍정의 논리보다는 부정의 논리가 동원된다. 내가 남보다 이런 점에서 국가경영을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남이 왜 부적합한가를 들추어낸다. 그것도 출신지역을 둘러싼 것이 주를 이룬다. 특정지역출신은 배제되어야 한다든가 특정지역사람이 단결되어야 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겠다는 포부는 커녕 지역주의를 고착시키고 조장하는 논의만 벌이고 있다. 얼마나 비생산적인가.
이런 멕시코식 후보선출과정은 얼마 전에 끝난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지명과정과는 많은 대조를 이룬다. 우리도 선거가 내년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곳곳에서 대선이 어떻고 대선 주자가 어떻고 하는 얘기는 분분했다. 차이라면 우리는 물밑에서 만사가 진행되고 미국에서는 공개적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 뿐이다.
경제도 어려운 마당에 대선논의까지 벌인다면 경제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우려도 있지만 어차피 대선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대선논의를 공론화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출신지역같은 문제로 밀어내기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경제정책이나 삶의 질 같은 문제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경쟁을 하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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