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생산·마케팅 등 “발상 전환”/경쟁사와도 제휴·중기 공동전선 확산/연봉제·실적급제 등 인사혁신도 거세『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마치 절벽 끝에 서서 상대방과 결투를 하는 심정으로 기업을 이끌고 있다』
최근의 불황에 대해 한 기업인이 털어놓은 말이다.
실제로 이번 불황은 종전과 판이하게 다르다. 예전의 불황 때는 정부가 세제지원도 해주고 관세와 수입규제를 통해 외국상품을 막아줬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지원도 없고 수입장벽도 사라졌다. 불황으로 손바닥만하게 줄어든 파이를 외국업체들과 경쟁해 나눠야 하는 상황이다.
재계가 노동계의 반발을 무릎쓰고 임금과 고용구조 부분에 손대기 시작한 것도 이같은 맥락과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땅값이 비싸고 이자율이 높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는 기업차원에서 손을 댈 수 없는 부분이다. 고용구조와 임금체계만이라도 바꿔 생산원가를 낮추고 효율을 끌어올리자는게 기업들의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같은 해에 입사한 사원이라면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같은 월급을 받는다. 폐쇄경제체제에서는 이같은 임금체계가 미덕으로 통했다. 이제는 다르다. 시장개방으로 외국의 「경쟁력있는 기업들」이 속속 들어와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어물 어물하다가는 먹힐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인사 생산 마케팅 연구개발등 경영 전분야에 걸쳐 과감한 체질개선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불황극복을 위한 새로운 생존전략은 산성체질을 알칼리성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근본적인 처방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사혁신과 관련, 감원선풍 발탁인사 연봉제도입 실적급제도입 인력재배치 등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경영전략에 있어서도 과감한 발상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경쟁적인 관계였던 기업들과 손을 잡는 소위 「적과의 동거」가 일반적 현상이 되었을 정도다. 재계의 앙숙인 삼성과 현대가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제휴했던게 대표적인 예다. 삼성과 대우도 손을 잡았다. 대우그룹 계열사인 오리온전기는 최근 삼성전관과 인도네시아에 컬러TV 핵심부품인 섀도마스크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 대우 기아 쌍용 등 국내 자동차업체들도 2000년까지 자동차 부품을 공용화하는 방안에 전격합의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 경영권을 스스로 내놓은 기업인도 적지 않다. 대륭정밀의 이훈 회장은 자신의 지분(17.9%)을 아세아그룹에 매각, 경영권을 넘겨줬다. 대륭정밀은 아날로그방식 위성수신기를 연간 1,200억원 어치씩 생산, 85%를 해외에 수출하는 등 중견기업이다.
대륭정밀은 위성수신기의 시스템을 현행 아날로그방식에서 디지털방식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수백억원의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데다 불황의 장기화로 시장전망도 어두워 경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번 불황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실 중소기업들이다. 시장개방으로 가구 화장품 신발 의류 등의 수입이 홍수를 이루면서 관련 국내업체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들 중소기업들은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판매 원료구입 등에서 공동전선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200여개의 신발업체들이 「귀족」이라는 공동브랜드를 만들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참존화장품 한국폴라 네슈라 등 30여개 업체들도 스쿠알렌 등 화장품 원료와 펌프류 등 기자재를 이달부터 구입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전략적 제휴바람은 가구 의류 피혁 전자부품 등 전 업종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김동기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불황극복의 열쇠는 기업들이 경영의 묵은 틀을 얼마나 빨리 깨느냐에 달려있다』며 『정부도 기업들이 고비용―저효율구조를 개선할 수 있도록 과감한 규제완화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박정규 기자>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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