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역사학자 라이샤워 교수는 한반도가 독일보다 빨리 통일될 것이라고 예언한 적이 있다. 독일의 주변국들은 독일이 통일돼 다시 강대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독일국민이 통일을 원한다 해도 통일은 요원하다고 본 것이다. 독일의 주변국에 비해 한반도의 주변국들은 상대적으로 한반도 통일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은 한민족 스스로에 달린 것이고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따라 통일을 빨리 이룰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그런데 불행하게도 그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주변정세의 변화를 활용해 민첩하게 국민적 합의를 이뤄낸 독일은 통일을 이룬 반면, 적어도 겉으로는 통일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주변 강국을 둔 한반도는 아직도 한민족 스스로의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채 분단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일은 우리 자신의 문제이다. 우리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인가?
우리 기업들의 나진·선봉 설명회 참가가 무산됐다. 이는 우리 일을 우리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설명회 참가 취소결정을 내리게 한 원인을 제공한 북측의 선별초청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관광객을 포함한 일본인과 외국인 수백명을 초청하면서도 53명의 우리측 참가신청자를 전부 초청할 수 없다는 북측의 변명은 도무지 그 저의를 알 수가 없다. 혹시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남한을 배제하고 일본에 의존해 보자는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가기도 한다. 북일 수교만 이뤄지면 배상금을 받게 될 터이고 또 그 돈을 탐내는 일본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측은 일본을 똑바로 다시 보아야 한다. 일본이 지금과 같이 어려운 북한에서의 기업활동 여건 아래서 북한에 유리한 투자나 협력을 해 줄리 만무하다. 일본이 설사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우리 민족에 유리한 방향으로 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것임은 물어보나 마나이다.
나진·선봉 참가가 무산된 데에는 남한측 정부의 잘못도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정부가 내건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정책을 달성하기 위해 참가를 결정했다면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참가단을 너무 남측의 시각에서 구성한 것은 아닌가? 북측은 기업인의 참관을 바라고 있는데, 북측이 기피하고 싶은 정부관련인사와 언론인을 너무 많이 참가단에 포함시킨 것은 아닌가? 남한의 참여없이 나진·선봉이 성공할 수 없다는 자만심에서 보다 큰 민족의 통일이라는 목표를 순간적으로 저버린 것은 아닌가?
지금은 냉전시대가 아니다. 냉전시대에는 남과 북이 제각기 상대방에게 비협조함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냉전시대의 맹주들이 뒤에서 서로를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해야 한다. 서로 협조함으로써 서로의 이득을 꾀할 수 있다. 물론 이 사실을 남과 북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단지 적절한 계기가 필요할 뿐이다.
우리는 나진·선봉이라는 좋은 계기를 또다시 놓쳤다. 기회를 휘어잡은 독일 지도자들의 결단력이 남과 북에는 없단 말인가?<연세대 통일연구원 원장>연세대>
□약력
▲1947년생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미 메릴랜드주립대 졸(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미 메릴랜드대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국제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연세대학교 부교수·교수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북한센터소장·통일연구원 원장 ▲경제계획론, 북한의 개혁전망과 통일과제 등 저서 다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