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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성운전자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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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성운전자 급증

입력
1996.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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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시절 꿈도 못꾸던 일” 시대변화 실감/남보다 까다로운 조건불구 학원등록 70%모스크바시민들은 여름을 대부분 다차(별장)에서 보낸다. 다차에 딸린 텃밭을 가꾸거나 친지들을 불러서 짧은 여름을 즐긴다. 이같은 풍속도는 이번 여름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말이면 교외로 빠지는 도로들이 다차로 향하는 자동차 행렬로 몸살을 앓았다. 그런데 올해 다차로 향하는 행렬에서 보이는 특이한 현상은 여성운전자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구소련시절만 해도 여자가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일은 금기사항과 마찬가지였다.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그것도 세계 최초로 여성 우주인을 배출한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가부장적인 전통에서 파생된 남녀 차별은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민주화와 개혁정책으로 서방문물이 대거 상륙하면서 전통적인 가치나 규범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여성운전자의 급증은 러시아의 과거 전통과 서양문화의 접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운전자는 그간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러시아의 자동차 보유대수가 지난 5년동안 60% 이상 늘었지만 여성운전자수는 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잠재적인 여성운전자도 상당하다. 모스크바의 키예프자동차학원의 경우 연 2,000명 가량의 운전연습생중 여성이 70%에 이른다. 여성이 자동차학원에 등록하려면 아직도 구소련시대의 유물인 까다로운 조건들이 남아 있다. 300달러 안팎의 학원비외에 임신중이거나 어린 아이를 보육하지 않고 있다는 병원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럼에도 수강생의 상당부분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에 밀려온 여성운전 붐이 얼마나 극성스러운지를 실감케 한다. 여성운전은 가부장적인 가정에 불화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보다 편리한 생활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내가 과거와는 달리 혼자 차를 몰고 슈퍼마켓이나 도매시장으로 가 필요한 생필품을 살 수 있다면 그만큼 다양한 삶을 꾸려 갈 수 있기 때문이다.

40대에 운전을 시작한 마리아는 『지난 40여년간 여자는 운전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살아 왔다. 운전을 시작하고 보니 그것은 웃기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민주화, 개혁정책이 생활습관은 물론 국민들의 의식마저 바꾸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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