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시학」,등단 60돌 맞아 삶과 시세계 조명/친일시 뒷얘기·후배문인의 추억담도 실어미당의 시는 이미 고전이다. 김종철 시인같은 이는 미당을 처음 만났을 때 「교과서에서 본 그가 살아 있다니!」 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미당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추석을 앞두고 쓴 시 한 편을 읽어 보자.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내 어렸을 때의 시간들·7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 푸른 풋콩 말아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어 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 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어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등단 60년. 미당 서정주씨가 공식 데뷔해 시적 재능을 펼친 지 올해로 60년을 맞는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한 뒤, 첫 시집 「화사집」(1941년)부터 「늙은 떠돌이의 시」(93년)까지 14권의 시집에 1,000여편 가까운 시가 그의 가슴에서 태어났다. 「부족 방언의 요술사」 「이 나라 시인부족의 족장」등 최고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아 온 그의 주갑에 이르는 시세계가 계간 「시와시학」 가을호에서 특집으로 조명되었다.
기왕에 「미당 자서전」(민음사간·전 2권)으로 자신의 시 창작이며 살아 온 이야기를 공개했지만 미당은 이 특집 첫 머리에 「나의 문학인생 7장」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지난 인생을 약술하고 있다. 청년시절 한때 경도됐던 공산주의의 극복과 서구적 휴머니스트에서 동양사상으로 회귀하는 과정, 신라주의를 표방하기까지의 변화가 간략히 소개되었다.
자서전에서 「창피한 이야기들」이라며 털어놓았던 친일시 제작의 과정과 그에 대한 소회도 빠지지 않았는데 미당은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징용령에서 면제되는 잡지사였던 인문사 편집기자로 있을 때…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쓴 것들이니 이 점은 또 이만큼 이해해 주셨으면 고맙겠다」고 밝혔다. 「내가 만난 서정주」에서 시인 김춘수씨는 미당에 대해 전해 들은 일화 등을 소개했고, 그의 가르침과 영향을 받은 시인 김종철 송수권 문정희 이 경씨의 추억담이 실렸다.
특집 논문으로 마련된 김종길 고려대 명예교수와 김용직 김윤식(이상 서울대), 권오만(서울시립대), 임보(충북대) 교수와 문학평론가 윤호병 윤재웅씨의 글은 미당시의 성격을 다양하게 조명하고 있다. 특히 김종길 교수는 『30여년 전 「시와 이성」이라는 글에서 그의 후기시가 상상력의 건전한 궤도비행을 이탈한 점을 지적했다가 곡해를 불러일으킨 뒤로 미당 시 전반을 거론하기는 처음』이라며 『그의 시는 은유적 사고와 사물 간의 관계 설정의 대담성, 병치와 조화의 오묘함, 그리고 원형적 이미지의 구사가 탁월하다』고 평했다.
권오만 교수는 「미당 시의 세 단계와 그 언어」에서 같은 소재를 형상화한 미당의 작품을 통해 미당의 청년기와 노년기의 세계인식, 미의식의 차이를 살폈다. 시와 시학사는 11월 중 미당의 문학인생 60년을 축하하는 모임을 마련할 계획이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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