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 틈탄 권력투쟁 가열될듯/차기주자들 벌써부터 “세몰이”/복잡 내외 정세 맞물려 위기감/견제·균형위해 전권 위임은 않을듯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끝내 심장수술을 받기로 결단을 내림에 따라 러시아 정국은 「태풍전야」의 긴장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수술성공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최고 통치자가 수술대 위에서 상당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복잡한 국내외 정세와 맞물려 상당한 위기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특히 수술을 전후한 사실상의 「권력 유고」현상은 91년 8월 공산보수세력의 쿠데타 당시를 연상시킬 만큼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내적으로는 옐친 대통령의 건강이상설로 촉발된 크렘린과 행정부, 국가안보위원회간의 권력투쟁이 「권력의 공백현상」을 틈타 더욱 가열될 것으로 우려된다.
옐친 대통령은 지난해 7월과 10월 두차례의 입원기간 병상에서 대통령 직무를 계속해 왔다. 따라서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대통령 권한을 어느 한개인에 전적으로 이양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에게 일상적인 국정운영을, 알렉산데르 레베드 국가안보위 서기에게 체첸평화협상의 중책을 맡기는 한편 아나톨리 추바이스 크렘린 행정실장에 조정역할을 담당하도록 해 상호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도록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들 3자는 「역할분담」에 충실하기 보다는 권력투쟁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포고령을 통해 통치돼 온 러시아에서 지난달 중순 터져나온 체첸 공격명령에 관한 대통령령의 위조 공방을 상기해 볼 때 대통령의 사실상 유고시 국정 주도권을 둘러싸고 각 세력이 전개할 이전투구 양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막바지에 이른 체첸평화협상을 놓고 주요 세력간 힘겨루기는 정국을 요동치게 만들지 모른다. 또 임금체불에 따른 각 사업장의 파업사태와 재정적자 심화, 권력층의 부정부패 등은 정국불안을 더욱 부추길 전망이다.
옐친 대통령의 수술이 잘못되거나 장기입원이 불가피할 경우 대권 후보들의 「세몰이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이같은 징후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지방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각지역을 순회하며 지지세력을 후원하고 있고 레베드의 정치조직인 「러시아공동체 의회」와 「명예와 조국」 등이 새로운 정치세력을 결성, 「레베드 대통령 만들기」에 본격 나선 상태다.
여기다 지난 대선에서 옐친에 맞섰던 러시아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 당수도 옐친의 공백을 틈타 의회를 중심으로 입지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여 러시아 정국은 혼돈의 소용돌이를 면치못할 형국이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의 핵가방이 최대 관심사다. 그가 수술대에 있는 사이 핵가방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는 향후 러시아 정국을 짚어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는 한편 자칫 핵위기를 초래할 소지도 없지 않다.
분석가들은 옐친 대통령의 집권 2기가 여러차례 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처럼 빨리 도래한 것은 의외라는 눈치다. 이는 그의 건강이상이 생각이상으로 심각하다는 반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옐친이 「안개정국」을 걷기위해 의외로 빠른 결단을 내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