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사는 운동화를 생산한지 꼭 20년만에 흔적없이 사라졌다. 한국신발이 세계 시장에서 한창 성가를 올리기 시작하던 76년 부산에서 신발산업에 뛰어든 이 기업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노다지를 캐는 기분으로 돈을 벌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국내임금이 오르자 사정이 달라졌다. 바이어들이 떠나고 눈치빠른 업체들은 해외로 생산라인을 옮기기 시작했다. 87년 6·29선언이후 노사분규가 절정에 달하면서 신발업체들은 썰물처럼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 기업도 바이어의 요청에 못이겨 뒤늦게 생산라인을 뜯어 인도네시아로 갔다. 그러나 저임금의 혜택은 잠시였다. 국내업체들끼리 과당경쟁을 벌이면서 임금이 뛰기 시작했고 인도네시아보다 임금이 싼 중국 방글라데시 필리핀등에서 생산되는 신발과 경쟁을 벌이느라 재미를 못봤다. 이 기업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지 2년만에 설비를 헐값에 팔아넘기고 바이어요청대로 중국으로 건너가 다시 최신설비를 깔았다. 처음엔 바이어가 주문대로 물건을 구입해가 잘 나가는듯 했으나 곧 저임금이 결코 저임금이 아님이 드러났다. 임금은 낮았으나 기술훈련비용 복지후생비용 등 간접비용을 포함하면 국내임금과 별 차이가 없었다. 믿고 있던 바이어마저 결별을 선언했다. 소재 디자인에서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바이어에만 의존하고 있던 이 업체로선 청천벽력이었다.『결국 저임금을 쫓아다니다가 이 꼴이 된 셈이지요』 끝내 두 손을 들고 만 이 회사 창업자의 자조섞인 말이다.
국제화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기업들이 해외로 다투어 나가고 있지만 개중에는 단지 사라지는 경쟁력을 저임금으로 보완하기 위해 저임금지역으로 「달아나는」기업들도 적지 않다. 「도피성 해외진출」인 셈이다. 국내에서 고임금의 장애물을 생산성과 기술 품질 등으로 극복하지 않고 쉽게 저임의 열매나 따먹겠다는 안이한 생각에서 나온 풍토다.
그러나 임금은 어디서나 오르게 마련이다. 개도국에서의 임금상승속도는 더욱 빠르다. 저임금은 결코 장기적인 경쟁력의 요인이 될 수 없다.
『저임금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다간 반드시 고사할 수밖에 없습니다』세계시장을 누비는 한 무역업자의 실토다. 그는 단지 저임금을 찾아 해외로 나간 기업중에 성공한 예는 거의 전무하다고 말했다.
저임금이 경제개발 초기에 우리 경제를 일으켜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성숙단계로 접어든 지금에 와서는 저임금이 오히려 경쟁력저하나 산업공동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저임금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고임금의 핸디캡을 생산성향상이나 기술개발 품질개선 등으로 보완하지 않고 저임금 자체만을 쫓다가 우리 경제를 망친 것이다.
고임금의 선진국들이 여전히 여러 산업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저임금이 최대의 무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도 저임금의 환상에서 깨어날 때다. 고임금이 고비용구조의 한 부분을 차지, 많은 기업들이 고임금때문에 문을 닫고 있지만 이 땅에서 이제 저임금을 기대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고임금의 핸디캡을 다른 방법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계속 저임금에 매달리다간 기술낙후 생산성저하에 의한 총체적인 경쟁력상실, 그리고 도피성 해외탈출로 인한 국내산업의 공동화를 치유할 길은 영원히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