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는 높은 권위를 인정받는 국제영화제가 그다지 많지 않다. 일본의 도쿄(동경)국제영화제가 규모와 투자면에서 크긴 하지만 아시아 영화인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자국 비평가들이 활발하게 참여하지 못하는데다 좋은 영화들이 출품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얼마전 중국의 상해(상하이)영화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 위력을 발휘할만큼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홍콩국제영화제를 꼽을 수 있다. 올해 20회를 맞는 홍콩영화제는 영어권 영화를 아우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권위를 높여왔다. 그러나 내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영화예술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다루는 것인데 중국정부의 주도로 열리게 되면 상상력에 대한 간섭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13일부터 부산에서 열리는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PIFF)는 아시아는 물론 아시아영화에 관심있는 세계 영화인으로부터 주목을 받을만하다. 한국영화는 그동안 세계영화계에서 미지의 분야였다. 다행스럽게도 80년대 중반 이후 주목할만한 감독들이 대거 등장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고 홍콩에 이어 아시아를 이끌 차세대 주역으로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관심에 일조를 한 것으로 최근들어 세계 각국에서 꾸준히 열리고 있는 한국영화 특별행사를 꼽을 수 있다. 93년에는 이탈리아 페사로영화제에서 20여편에 달하는 한국영화가 대대적으로 소개됐고, 이듬해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60여편의 영화가 「한국영화주간」이라는 타이틀로 장기간 상영되기도 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늦기는 했지만 이러한 행사 등에 힘입어 한국영화는 그 독특한 영상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로 향한 배급 등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이런 점에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우리의 영화를 세계에 드러내려는 영화계의 적극적이고 야심찬 움직임이다. 세계 영화의 조류를 조망하고 한국영화의 모습을 평가받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세계 영화의 흐름을 일별할 수 있는 월드시네마 부문도 비중이 크지만 동시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영화의 집중 조명과 신인감독들의 발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 초청된 인물 중에는 유럽과 미국, 아시아의 영화계 실력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참가하는 이유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수한 한국영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매력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한국영화의 세계 진출이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은 자명하다. 최근들어 한국영화의 국내 흥행이 외국 영화를 압도하는 등 한국영화 부흥의 기치가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에 희망은 더욱 크다.
부산은 해양도시인만큼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이 강하다. 인식과 문화의 벽을 헐고 다양하고 새로운 형식과 사조를 흡수하기에 적합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처음 시도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영화인은 물론 부산시민, 영화팬들이 거는 기대는 대단하다.
부산시는 현재 영상산업유치를 위한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이미 상당부분 작업을 진척시켜나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나면 그러한 계획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바다를 배경으로 영상문화가 활발하게 꽃피는 아름다운 문화도시 부산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약력
▲1955년생
▲서울대 조소과, 프랑스 파리 영화교육특수학교(ESEC) 졸업
▲「칠수와 만수」(88)로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 「그들도 우리처럼」(90)으로 프랑스 낭트영화제 감독상.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95)로 청룡영화제 작품·감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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