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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노마 필드 저(요즘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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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노마 필드 저(요즘 읽은 책)

입력
1996.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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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사회 일각의 「역사 바로세우기」올 8월은 유난히 무덥고 갑갑하기만 했다. 낮에는 낮대로 오존공포에 시달리면서 있는대로 땀을 흘려야 했고, 밤은 밤대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열대야에 짓눌려 뒤척이기만 했다. 그런데 그것이 꼭 무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 편에서는 전직 대통령들이 나란히 서서 사형선고를 포함한 극형을 선고받았는가 하면 한총련이 벌인 통일제전은 대학건물을 화염 속에 몰아 넣으면서 무더기구속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전직 대통령에게 사형선고까지 내리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일제하의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고, 내일의 통일시대를 이끌어 가야 할 학생들은 국민과 가족을 등진채 화염병을 던지면서 혼란스럽게 만들고야 말았다.

일본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시절 일본에서 태어난 노마 필드의 책은 오늘 우리의 상황을 차분하게 성찰해 볼 수 있는 지혜를 주고 있다. 일왕 히로히토(유인)의 죽음, 일본역사의 깊은 단면을 간직한 세 지역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역사를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다. 즉 일본 안의 식민지로 오랜 세월 아픔을 눌러 온 오키나와, 여러 명의 일본총리, 심지어 A급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안신개)를 배출한 야마구치, 일본의 패망과 일왕의 항복을 불러온 일종의 확인사살을 당했던 나가사키. 저자는 오키나와에서 일장기를 불태우고 갖은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오키나와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살아가는 슈퍼마켓 주인, 허울좋은 일본의 평화지향을 고발하면서 일본을 위장하여 이끌어 가는 신사에 몸으로 맞서는 기독교신자인 한 부인의 애달픈 투쟁, 갖은 테러 속에서도 원폭투하의 책임이 천황에게 있다고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일본의 전쟁과오를 묻는 나가사키 시장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 한 구석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역사 바로세우기」의 노력을 엿보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같은 자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시민모임이 밝힌 바와 같이 「민주주의사회에서는 어떠한 터부도 용납될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새겨 보아야 할 것같다.<이재정 성공회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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