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만능주의에 대한 철학적 비판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됐을 때, 언론은 「인간이 지구라는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제일보를 내디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인류가 지구의 속박에서 풀려나게 됐다는 이 「이상한 진술」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75)에겐 삶의 의미와 실존의 문제를 되돌아 보게 만든 화두였다. 신에 대한 거부로 시작된 근대의 인간해방과 세속화가 마침내 인간 생존의 「조건」인 지구마저 거부하게 만든 것인가. 유대인으로 야스퍼스와 하이데거의 밑에서 수학한 그는 스푸트니크 발사 이듬해에 발표한 이 책에서 「인간의 조건」을 탈피하려는 과학과 기술시대의 만능주의를 경고하고 있다.
현대인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맹신으로 나치정권보다 더 뿌리 깊은 「기술적 전체주의」에 함몰된 채 지구를 하나의 작위적 실험장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그는 우려한다. 기계화의 확산과 함께 인류는 인간다움의 기본 조건이었던 노동마저 사라진 삭막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밝혔다시피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명쾌한 처방은 없다. 다만 그는 현대인의 「사유하지 않음」에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진단하면서 인간의 조건들을 다시 사유해 보자고 권유하고 있다. 한길사간·1만8,000원<변형섭 기자>변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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