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에 주재하고 있는 한 기업인이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직물공장을 방문하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공장에서는 원사가 한국보다 20∼30% 싼 가격에 생산되고 있었다는 것이다.『미국 회사는 주정부로부터 땅을 거저 얻다시피 하고 한국보다 훨씬 싼 금리로 돈을 빌려 공장을 짓습니다. 생산라인을 자동화해서 대량생산을 하니 원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지요. 저임금을 바탕으로 80년대까지 한국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섬유산업이 이래가지고 미국땅에 발을 붙일 수 있겠습니까.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자동차나 전자제품은 더 어렵습니다.』
뉴욕 일대의 한국기업 주재원들은 요즘 서울 본사로부터 엄청나게 시달림을 당하고 있다. 본사는 현지실정도 모르고 영업실적만 놓고 호통치지만 주재원들은 현지에서 피부로 느끼는 체감지수가 지표나 장부에 나타나는 것보다 악화해 있다고 울상이다. 엔화 하락으로 국산 자동차는 동급 일제차와 거의 비슷한 가격으로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고 국산 가전제품은 미국 상품의 가격파괴를 당할 재간이 없다. 미국 언론들도 「호랑이 이빨이 빠졌다」느니 「정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경제불안이 도사리고 있다」느니 하면서 한국경제의 후퇴를 비꼬듯 기사화하고 있다.
우리 정부에도 비상이 걸린 것 같다. 어느 경제장관은 산업현장에 거의 살다시피하면서 수출을 독려하고 있고 워싱턴의 주미대사도 얼마전 뉴욕까지 와서 상사주재원들과 수출대책을 논의하고 돌아갔다. 모두들 어느날 갑자기 생긴 일인양 호들갑이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정부관리들은 기업에 그 책임을 돌리고 기업은 정부의 탓으로 전가하는 인상마저 풍긴다.
한 상사주재원의 충고가 따끔하다.
『수출둔화는 오래전부터 예견됐던 일입니다. 임금과 땅값, 이자율이 모두 높기만 한데 경쟁을 할 수 있습니까. 수출을 독려하기 앞서 수출둔화의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하는게 급선무입니다』<뉴욕=김인영 특파원>뉴욕=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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