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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논리(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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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논리(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6.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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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또 한사람의 전직 대통령도 중형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냉담해졌다. 구속에서 1심 판결까지 10개월이나 끌어왔기 때문에 흥분도 가라앉을 때가 되기는 했다. 그렇다고 이 엄청난 국가적 불행이 금방 잊혀져야 할 일인가. 국민에게는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도 있다. 국민감정을 진정시키고 국민이성에 냉정히 물어볼 때다. 그동안의 혼란을 정리하여 우리가 선 자리를 둘러볼 때다.과거청산은 그 대의와 명분에도 불구하고 여러 의문들이 제기되어 왔다.

「역사 바로세우기」가 계엄령처럼 선포되었다. 과거의 역사들이 줄줄이 소환당했다. 역사는 문초되고 마침내 심판받았다. 왜 느닷없이 역사를 성난 얼굴로 뒤돌아보기 시작했는가.

정치적 합의로 매장의 절차까지 끝내놓고 공소시효의 시비가 일만큼 다 잊어버릴만한 때에 와서 버린 칼을 새로 갈아 왜 새삼스럽게 부관을 하는가.

이번 법원의 판결은 5공 정권의 탄생을 쿠데타로 단정했다. 쿠데타를 단죄한다면 왜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것만 쿠데타인가. 법정에는 시효가 있더라도 역사에는 시효가 없다. 역사 바로세우기라면 정권을 찬탈한 인물들을 역사책에서 다 끄집어내어 청사의 이름으로 심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쿠데타를 다 부인하기로 하면 특히 광복후 우리 국가발전의 역사는 남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오늘의 우리 사회는 쿠데타 정권의 통치행위의 결과가 아닌 것이 없다. 집권당의 혈통에는 쿠데타의 피가 섞여 있고 정권의 정통성은 쿠데타를 빼고는 이어질 수 없다. 쿠데타가 무효라면 지금 유효한 것이 무엇인가.

쿠데타의 단죄는 거액의 비자금 노출이 기폭시켰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비자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스러웠던 정치인이 몇이나 될 것이며 이들의 정치자금은 「포괄적 뇌물」이 아니란 말인가.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의 액수는 밝혀낸 것이 없다.

비자금은 당시로서는 공지의 일이었다. 미처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죄가 되어 버렸을 때는 죄의식에 둔감했던 시대에도 책임이 있다. 어제의 것을 오늘의 잣대로 재자면 가치의 혼란이 온다.

이번 재판은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이라 했다. 그러나 재판 결과 얼마만큼의 새로운 진실이 밝혀졌는지 의문스럽다. 형량이 국민감정에 부합된다고 해서 반드시 명판결은 아니다.

대충 이런 것이 지금까지 다수의 고함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던 목소리들이다. 역사는 반드시 다수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다수가 곧 정의인 것도 아니다. 역사의 정화작업이 국민적 합의라고 하더라도 논리의 혼란은 남는다. 역사 자체는 반드시 논리적으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겠지만 역사의 정립은 논리적이라야 한다. 논리의 혼돈에서 오는 이 국민정신의 분열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상황인식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전직 대통령들의 처벌을 둘러싼 일련의 조치들은 특단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일종의 혁명이다. 오늘의 시대상황은 혁명기적인 것이다. 혁명기적 상황으로 밖에는 달리 논리의 모순을 해명할 길이 없다. 혁명만이 역사논리를 비약시킬 수 있다.

쿠데타의 단죄를 위한 특별법은 혁명입법의 성격이요 재판은 혁명재판이나 다름 없다. 혁명재판은 본시 혁명행동의 일부다. 실행 당시 적법이었던 행위라도 그 뒤 제정된 혁명입법에 의해 위법이 되는 것이 혁명재판이다. 일종의 혁명인 쿠데타를 새로운 혁명이 뒤집고 있다. 혁명만이 혁명을 심판할 수 있다.

언론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들린다. 어제 찬미가를 부르던 입에서 일제히 같은 목소리로 저주가 나오고 있다. 이런 합창은 쿠데타 정권이 길들인 것이라 자업자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혁명기의 언론양상이다.

혁명에 의한 혁명의 반전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시대상황이다. 이 혁명은 새로운 이름으로 불려지고 기록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래야 「역사 바로세우기」도 역사로 정립될 것이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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