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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돌아온 아이들」/김준형 국제1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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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돌아온 아이들」/김준형 국제1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6.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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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후보지명 수락연설을 끝으로 민주당 전당대회는 29일 막을 내렸다. 시카고에서 이틀을 보낸 클린턴의 감회는 특별했을 것이다.68년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던 이곳에서는 베트남전 반대시위대와 진압경찰의 충돌로 유혈참극이 벌어졌다. 당시 클린턴은 워싱턴의 조지타운대에서 반전시위를 주도하던 대학생이었다. 대통령으로 변신, 반전시위의 메카에서 후보로 재지명된 클린턴을 미국언론은 「돌아온 아이」라고 불렀다.

68년 반전시위는 「자유의 수호자」, 「민주주의의 본산」임을 자부해온 미국사회에 커다란 도전이었다. 미국인들은 같은 또래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죽어가는 동안 마리화나를 피워대며 링컨동상에 베트콩 깃발을 꽂는 「이적행위」를 하는 대학생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당혹해 했다. 한편으론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던 유혈진압 장면이 텔레비전을 통해 고스란히 안방으로 중계됨으로써 미국인들의 가슴에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을 충격을 남겼다.

그로부터 28년뒤 시카고에는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전당대회장 안에서 클린턴에 환호를 보냈고 일부는 여전히 대회장 바깥에서 보수주의로의 회귀를 경고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저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시카고를 찾은 이들도 있었다. 각각 다른 모습으로 시카고를 찾았지만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며 미국사회를 지탱하는 중심세대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이들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미국사회가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시위와 관련된 자들에게는 일자리도 줄 수 없다』는 식으로 수많은 학생들을 벼랑끝으로 내몰았다면 클린턴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가 됐을 것이다. 아이가 철이 없다고 어른까지 이성을 잃으면 집안이 제대로 꾸려질 수 없다는 것을 남의 나라 전당대회를 계기로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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