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부산 출항→중국 선원 7명 합류→잦은 마찰/징계위서 조기 귀국 수용하자 앙심품고 살인극/어창 들어가자 감금,이인석씨 헤엄쳐 구조 요청온두라스 국적 원양참치잡이어선 페스카마15호 선상반란사건의 전말이 29일해경의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점차 드러나고 있다. 이번 사건을 해경의 선상수사 상황을 종합해 재구성한다.
페스카마15호(2백54톤·선장 최기택·32)는 6월7일 하오 2시께 선장 최씨등 우리나라 선원 7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10명을 태우고 부산 남항을 출항했다. 이 배는 같은달 15일 괌 인근 튀니안에서 문제의 중국인 선원 7명을 승선시킨뒤 같은달 18일부터 사모아섬 인근 해역에서 참치잡이에 들어갔다.
그러나 중국인 선원들은 승선직후부터 우리나라 선원들과 마찰을 빚었고 40여일만인 7월29일께 일이 힘들다며 귀국의사를 밝혔다. 이에 선장 최씨등 간부선원들은 본선징계위원회를 열어 귀국희망 선원들을 조기 귀국조치키로 결정했다.
그러자 중국인 선원들은 조기 하선에 따른 손해 등을 우려해 앙심을 품고 수차례 모의끝에 8월2일 새벽 3시께 잠자고 있던 선장 최씨에게 개인면담을 이유로 선실 밖으로 불러낸 뒤 주방용 식칼 등으로 살해하고 수장시켰다.
이어 이들은 기관장 김신일씨(43)등 우리나라 선원 6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3명 중국인 1명등 10명을 선장이 개인면담을 하자고 한다며 유인해 밧줄로 묶은뒤 살해, 역시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
특히 이들은 맹장염증세로 동원 212호에서 편승한 실습기관사 최동호군(19)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데도 아랑곳없이 산채로 수장시켰으며 반란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료 중국인 선원 최만봉씨(27)와 인도네시아 선원 2명을 냉동창고에 감금, 동사시켰다.
이들은 일본으로 밀항하기로 하고 고기상자로 뗏목 2개를 만들어 놓는 등 완전범죄를 기도했다. 또 범행에 사용한 도끼와 주방용 식칼 등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고 선박 내벽과 갑판 등에 묻은 피해선원들의 혈흔 등을 해도식별용 대형돋보기로 말끔히 지워버리는 등 철저하게 증거를 없앴다.
또한 항해에 필요한 1등항해사 이인석씨(27)와 인도네시아 선원 6명등 7명도 일본 육지 근처까지 접근하면 배와 함께 수장시킨다는 계획을 짰다. 유일한 한국인 생존자인 이씨는 나머지 인도네시아선원들을 규합, 기회를 엿보던 중 22일 상오 반란선원들이 부식과 선체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 어창에 들어간 순간 반란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이씨 등은 재빨리 뛰쳐나와 어창문을 밖에서 잠가 중국인들을 감금시킨 뒤 로프로 묶었다.
그러나 기름탱크에서 연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바람에 기관이 정지돼 배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4일 하오 6시30분께 이씨는 동경 남쪽 5백50㎞ 도리시마(조도) 인근 해상에서 일본 어업조사지도선 미야코호가 지나가자 인도네시아 선원 1명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 구조를 요청했다.<부산=한창만 기자>부산=한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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