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대해 법원이 선고한 1심판결의 핵심은 12·12사건을 군사반란으로, 5·17 5·18을 내란으로 심판한 것과 함께 정경유착에 대해 철퇴를 내렸다는 점이다. 최고통치권자와 재벌간의 금품거래는 사실상 어떠한 명목의 것이라도 불법적인 뇌물로 규정한 의미는 매우 중요하며 앞으로 우리의 정치토양에 이것이 어떻게 활착될 것인지에 우리의 관심이 모아져 있다.당초부터 전·노씨가 재벌로부터 받은 돈에 대한 인식에 대해선 통치권과 국민간엔 너무나 큰 괴리가 있었다. 이들은 재벌로부터 아무런 조건없이 돈을 받았고 이는 3공이래 관행인 「통치자금」 「비자금」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수 있다는 위치를 이용, 기업주에게 이익을 주고 뇌물을 받은 것은 죄질이 매우 나쁘거니와 더욱이 엄청난 부를 축재케함으로써 국민에게 상대적으로 박탈감과 소외감을 주는 등 막중한 정신적 피해를 주었다고 단정했다. 한마디로 직무행위를 이용하여 받은 뇌물로 정의한 것이다.
따라서 일부 재벌들이 뜻밖에 무거운 형을 받은 것도 바로 「뇌물」이란 유권해석 때문임이 분명하다. 재벌들이 수십억∼수백억원씩 건네주었으면서도 법정에서까지 『아무런 대가없이 통치행위에 쓰라』고 준 것이라 변명한 것은 언듯이해 안된다.
그간 통치권자와 재벌이 이익·이권과 돈을 주고받은 뇌물수수는 한마디로 정경유착의 전형이었다. 때문에 전·노씨가 재임중 공식기구, 즉 안기부장·경제수석·국세청장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손을 벌리고 이에 재벌이 이권을 기대하며 적극적·소극적으로 뇌물을 주는 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해 온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었다.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통치자금이나 비자금이라는 제도는 없다. 정치자금법 3조에 규정된 당비 후원금, 기탁금, 국고보조금, 후원회의 모집 금품 및 정당의 부대수입 등의 「정치자금」 뿐이다.
돌이켜 보면 이땅의 권력형비리는 정치부패와 깊은 관련이 있고 정치부패는 정경유착에서 연유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대로다. 권력자들은 직권을 남용하고 재벌의 약점을 이용, 검은 자금을 받고 재벌은 이권을 위해 기꺼이 돈을 바친 악순환이 정치부패·사회부패로 번지게 했다는데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초 『재벌들로부터 한푼도 안 받겠다』고 한 근본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국민들로서는 이같은 뜻과 다짐을 크게 환영하면서 고위참모와 집권당의 간부들도 이같은 원칙을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는가에 대해 깊이 주시하고 있다. 만의 하나 참모·중진들 중에 은밀하게 재벌측에 시선을 보낸 적은 없는지, 또 재벌들 역시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일이 없는지 모두가 자계해야 한다. 정경유착이란 말이 우리 정치에서 재현되지 말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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