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의 주변에는 SF로 분류될 수 있는 서사물들이 차고 넘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TV의 만화시리즈 중 매우 많은 수가 SF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상업적 성공을 거둔 외국영화들 중의 상당수가 SF물에 해당하는 작품들이다. 서점에 가보면 또 어떤가. 수많은 SF소설들이 당당하게 서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이처럼 오늘날 우리들에게 SF로 분류될 수 있는 서사물들이 풍요롭게 제공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또 바람직한 현상이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힘의 아주 큰 부분이 과학기술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힘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에 대하여 서사예술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에 그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다시 한 번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쏟아지고 있는 SF물들 그 자체에로 돌아가 구체적인 실상을 꼼꼼히 탐사해 가다 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는 사실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된다. 만화의 경우든 영화의 경우든 또 문학의 경우든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 SF물은 대부분이 수입품이라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문학의 경우에 이러한 현상이 제일 심하다.
지금까지 한국작가의 손으로 쓰여진 SF소설 중 대중적인 흥미에만 치중하지 않고 본격적인 문학예술의 품격까지 갖춘 것은 복거일의 「역사 속의 나그네」(미완)와 「파란 달 아래」, 채영주의 「시간 속의 도적」 등 불과 몇편 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이 작품들이 갖고 있는 SF소설로서의 면모에 대하여 비평적인 관심을 표명한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알기에는 지금껏 나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참으로 적막감을 느끼게 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작가세계」 가을호를 보면 이러한 적막감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는 소설작품이 하나 발견된다. 황병하가 쓴 「암호의 해독」이 그것이다. 짤막한 단편이기에 위에서 열거한 세 편의 소설과는 그 규모가 다르며 본격적인 문학예술의 품격이라는 측면에서도 그 세 편보다는 다소 손색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소한 SF적 상상력의 참신성과 문제성만은 정말 인상적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뛰어난 SF적 상상력을 길잡이 삼아 인류사의 본질이 무엇이고 자유의 본질은 또 무엇인가라는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접근을 행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발견하고 유쾌한 흥분을 금할 수 없었다.<이동하 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 교수>이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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