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어떻게 보면 모두 다 어린아이 같아서 눈 앞의 것은 아옹다옹하고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지만 한 치만 거르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숙한 사회일수록 사회의 모든 일들이 결국은 나와 내 가족에게 연관되어 있는 것임을 인식하여 당장 나에게 오는 불이익이 아니더라도 함께 문제를 제기하고 풀어나가는 시민의식이 발달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범죄 또한 언젠가는 내 자식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거리를 지나는 많은 시민들이 여성의 비명소리를 그냥 듣고 지나치지는 못할 것이다.이러한 타자에 대한 무관심은 환경문제에 이르러서는 문제발생의 본질과도 같은 것이다. 나의 행위 하나 하나가 환경문제 전체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지구 전체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지역의 작은 문제들이 전 지구적 차원의 환경문제와 모두 다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달 중순께, 연예인이나 사회저명인사가 평소에는 가보기 어려운 작업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려 일하고 받은 돈을 불우이웃돕기에 기증하는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텔레비전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하기 힘든 작업을 골라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여과없이 진솔하게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을 평소에도 호감을 가지고 보아 오던 터였다.
그러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두 젊은이가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 지역에 가서 벌목작업을 하는 것을 소재로 한 이 날의 방송을 보고 방송제작자, 출연자, 진행자를 통틀어 철없고 또는 무지한 환경의식의 단면을 보게 되어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카메라는 인도네시아의 이리안자야라는 곳에서 30년의 벌목권을 얻어 10년간 벌목작업을 해온 한국과 인도네시아 합작기업인 코데코그룹의 벌목현장을 담고 있었다.
○지구적 차원 문제
우리나라의 경상북도 크기 정도의 벌목지역에서 베어진 나무는 배에 실려 합판공장으로 간다. 원목 자체의 수출이 금지되고 가공한 나무로만 수출이 허용되자 합작형태로 인도네시아에 목재수입국들이 진출하게 되었다는 것이 내레이터의 설명이었다. 그 곳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20여명, 현지인은 1,000여명 가량된다고 한다. 현지인과의 관계는 어떠냐는 질문에 출연자는 『한국인이 현지에 문화시설, 체육시설 등을 지어줬기 때문에 관계가 좋다』고 말했다.
마음에 아프게 남는 것은 베어지는 나무에 대한 현지인들의 태도였다. 「아폴로」라고 불리는 불가사리를 닮은 독특한 나무를 잘라낼 때 옷에 튄 나무의 진을 그 사람들은 「나무의 피」라고 표현하고 나무가 쓰러질 때 내는 소리를 「나무가 우는 소리」라고 말했다. 또 그와는 다른 의미로 마음에 아프게 남는 것이 있었다. 그곳을 다녀온 두 젊은이의 소감이 『합판은 올림픽 금메달처럼 값진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머리를 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느꼈다. 물론 우리도 한 때는 「우리나라가 외국에 가서 나무를 베고 합판을 만들만큼 성장했다」고 뿌듯해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 세계적인 삼림파괴는 전 지구의 문제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닥칠 우리의 문제와 연관되는 일이다. 현재 전 세계의 삼림은 원래 면적의 3분의 1만이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한다. 자연과학자들은 수많은 종의 멸종, 한발과 홍수의 심화, 사막화, 지구온도를 높이는 이산화탄소의 증가, 지역적인 온도변화 폭의 증대, 농경지에 의한 새로운 해충의 침입 등을 삼림 파괴의 결과로 지적한다.
○우리 후손을 위협
문제는 또 있다. 바로 현지 주민들의 삶이다. 원시림이 파괴되고 난 이후의 임업도시는 어디나 말할 것 없이 토착문화가 파괴되고 자본과 소비가 판쳤으며 결국 알코올, 질병, 소외로 파괴되어 갔다. 이는 체육관이나 극장 몇개로 해결될 문제가 절대로 아니다. 조국애를 느꼈다는 출연진의 말에는 한숨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방송제작자, 방송사의 환경문제 인식의 태도에도 큰 문제가 있다. 적어도 한 나라의 공영방송이라는 곳에서 그릇된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을 당당하게 방영하는 것은 국민의 인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전 지구적 차원의 환경문제에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무절제한 종이낭비, 기업의 논리와 소비풍조에 부추겨진 목재수입의 증가 등이 현지 주민의 자연스러운 삶을 파괴하고 지구의 허파를 파괴하는 일이 된다면 결국 그 영향은 오래지 않아 나와 내 후손의 미래를 위협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지구 저 건너편에 있는 인도네시아의 울창한 나무들이 내는 울음소리가 나와 연관돼 있음을 인식하여 그 소리가 우리 가슴 깊숙한 곳에 울릴 때 진정한 세계화를 위한 진정한 조국애가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환경운동연합>
□약력
▲1927년 서울 출생 ▲숙명여전 화학과, 서울대 화학과 졸 ▲미 위스콘신주립대대학원 석사, 서울대 대학원 박사 ▲숙명여고, 미 로치터 성신여고, 서울 성심여고 교사, 성심여고 교장 ▲성심여대 교수, 학장, 총장 ▲성심학원 이사장 ▲현 가톨릭대 성심교정 부총장,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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