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특혜·이권 없어도 뇌물죄 성립/돈세탁·가명관리도 「검은돈」 입증요건”담당 재판부가 전·노씨 비자금사건과 관련, 모든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한마디로 「포괄적 뇌물론」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재판부는 이날 『뇌물죄에서 말하는 직무관련성은 법률에 규정된 공무원 직무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직무권한도 포괄적으로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것은 특정사업 발주 등 대통령의 구체적인 권한이나 영향력 행사에 따른 대가로 받은 돈이 아닌만큼 뇌물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전·노씨측 주장을 정면으로 배척한 것이다. 전·노씨는 그동안 재판과정에서 재벌총수들로부터 정치자금이나 총선―대선자금 등 관행으로 돈을 받았을 뿐 특혜나 이권대가로 돈을 받은 적은 없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변호인단은 『뇌물죄의 본질은 직무관련성인데 검찰의 공소장은 구체적으로 재벌들이 대통령의 어떤 직무와 관련해 돈을 줬는지 불분명하다』며 재판부에 공소기각판결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개별적인 뇌물수수 행위마다 직무관련성이 구체적으로 명시돼있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직무권한에 속한 것이면 포괄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전씨측 주장 가운데 리비아 2차대수로공사와 관련, 전씨가 해외공사에 대한 인·허가권을 쥐고있는 행정부 수반이기 때문에 동아그룹으로부터 받은 돈 역시 뇌물이라고 판단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재판부는 또 재벌총수들이 『대통령에게 돈을 준 시점은 시기상으로 사업수주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3공부터 6공까지 대통령이 재벌총수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하나의 관행』이라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인정치 않았다.
구체적인 특혜나 이권이 없었더라도 기업활동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대통령의 직무권한을 알고서 재벌총수들이 돈을 줬다면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본 것이다. 이 부분은 재벌총수들도 재판과정에서 자신들의 기업이 금융 및 세제운영에서 다른 경쟁기업에 비해 최소한 불이익을 받거나 박해를 받지않게 해달라는 취지에서 돈을 줬다고 시인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와함께 「직무관련성」과는 별도로 전·노씨가 돈을 받은 장소, 돈의 관리방법, 사용처, 세탁과정 등도 뇌물죄 성립의 요건에 해당된다고 해석했다.
먼저 재벌총수들이 다른 경쟁기업과 차별된 이익을 기대하고 돈을 준다는 사실을 전·노씨가 알고 있었던데다 청와대 접견실이나 안가, 집무실 등 은밀한 장소에서 비공식적으로 재벌총수들을 독대해 돈을 받은 점등으로 볼 때 직무상 아무런 이권·대가 관계 없이 준 성금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또 대통령 재임기간에 수천억원의 돈을 가명계좌에 분산예치하거나 철저한 자금세탁을 거쳐 CD(양도성예금증서)와 무기명채권 등으로 은닉한 점, 퇴임후 2천억원 이상의 거액을 보유해온 것도 「검은 돈」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봤다. 민정당 운영비와 총선 및 대선자금, 정치인 격려금 등으로 사용했다는 전씨측 주장과 정치자금과 함께 퇴임후 통일 관련자금으로 사용하려 했다는 노씨측의 주장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박정철 기자>박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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