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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사회(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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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사회(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6.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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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의 분탕질을 한바탕 당하고 난 우리 사회는 아직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총련을 와해시킨다는 것이 당국의 호언이지만 지금까지는 왜 뿌리뽑지 못했는지도 의문스럽고 여전히 잔재세력들이 꿈틀거리고 있어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도대체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철없는 대학생들의 소행으로 치부해버린다면 나라 자체가 철없는 것이 된다. 제 정신 박힌 대학생들의 운동으로 간주하자니 나라가 힘없는 것이 된다. 나라의 체모가 말이 아니다.

한총련의 농성시위는 나라 전체의 모든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고 시험이었다. 그 결과 권위있는 권위가 어느 구석에도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황량감이 한총련이 휩쓸고 간 농성장의 폐허 못지 않은 충격이다. 권위의 추락이 반드시 요즘 하루아침에 일어난 돌발적인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새삼 자각시키는 큰 계기가 되었다.

우선 사태가 이렇게까지 발전되도록 학생들의 간을 키워 온 정부의 권위가 한심하다. 게다가 쇠파이프와 화염병 앞에 무력한 채 끝내는 경찰관의 생명까지 희생시킨 공권력의 권위는 머리를 들 수가 없다. 학생들을 설득해야 할 대학교수들의 권위는 뒷짐쥐고 있다. 자식들을 선도해야 할 부모들의 권위는 포기된 지 이미 오래다. 사회를 책임진 정치지도자나 지식인의 언동에도 권위의 무게가 없다. 더욱 분한 것은 우리 모두가 공기처럼 숨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 자체의 권위가 화염병을 맞은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는 어떤 반자유민주주의적인 폭거도 용납될 수 있다는 인식은 자유민주주의의 권위에 대한 능멸이 아닐 수 없다.

권위주의 시대가 있었다. 학생운동은 이 권위주의를 몰아내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들이 권위주의를 쓸어내는 빗자루에 권위도 함께 쓸려 나가고 있었다. 오늘의 학생운동은 권위의 청소작업이 되었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판이하다.

권위는 그 사회를 끌어가는 견인력이다. 「권위있는 사전」 없이는 낱말의 뜻 하나도 불분명하고 「권위있는 의사」 없이는 건강이 위태로워진다. 권위가 없는 사회는 이렇게 불안하다. 특히 정치영역에서는 정치적 지배의 요체가 권위의 성립이요 지배의 정당성에서 나오는 권위없이는 정치적 안정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권위주의는 자기의 의사결정을 아예 귄위에 맡겨버리는 심적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힘에 대한 맹종과 약자에 대한 가학 등 독재적인 징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배격의 대상이 된다.

권위가 없는 사회는 어른의 기침소리가 없는 사회다. 저마다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도 일갈할 목청이 없고 천방지축으로 날뛰어도 야단칠 회초리가 없다. 아래 위가 없이 모두 동격이요 질서도 규율도 없이 난장판이다.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미처를리히가 말하는 「아버지 없는 사회」다. 그는 비등한 자들끼리 모인 그룹 외에는 일체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 사회를 이렇게 불렀다.

예부터 아버지는 자식의 하늘이라 했다.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하는 것을 기우라고 한다. 마침내 하늘이 무너짐으로써 사회에 혼돈이 왔다. 기우는 기우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이 부부자자의 사상이 정명론의 기본이다. 모든 것은 그 이름에 합당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도 아버지가 아버지이지 못한 실부의 사회에 살고 있다.

권위는 믿음이다. 자식에게 아버지는 하나의 종교다. 종교가 파산하는 곳에서 사교가 시작된다. 한총련 학생들의 행태는 꼭 사교집단과 같다. 허상을 숭배하여 박장을 치고 있다. 이들에게는 파괴가 곧 질서다. 권위를 무너뜨린 자리에 우상을 세운다. 아버지를 쓰러뜨린 자리에 김일성을 모신다.

지금 이 땅의 아버지들은 어디로 갔는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아버지를 찾아내야 한다. 이들은 각자 어서 아버지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다. 실권한 권위의 복권이 급하다. 사회 구석구석의 기진한 권위란 권위들은 떨어뜨린 의관을 새로 정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총련 뿐이 아니다. 언제 어떤 사교가 세상을 더 크게 어지럽힐지 모른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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