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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10월과 96년 8월/박승평 수석논설위원(일요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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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10월과 96년 8월/박승평 수석논설위원(일요시론)

입력
1996.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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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 학생들의 소위 이적·폭력 난동사태가 일진광풍처럼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다. 9일간의 소란이 끝난뒤 남은건 연세대캠퍼스의 스산한 잔해, 그리고 국민들의 가슴을 짓누르는 자괴지심과 무력감이다.이번에도 또 목청만 높이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지는 않을까 하는 의념마저 사람들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쭉 그래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사건과 교훈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지만 86년 10월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가. 그리고 또 89년 5월의 또다른 비극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온전한가. 역사 바로세우기에 여념이 없다는 우리 통치권과 공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우리 검찰과 경찰 등 공안당국, 그리고 지성과 양식의 상징이어야 할 우리 대학측에 감히 묻고자 한다.

5공말기인 86년 10월이야말로 우리 학원 점거농성 시위사상 잊어서는 안될 건국대 사태가 터진 때다. 당시 전국의 29개대의 애학투 소속 1,500여명이 건국대본관 등 5개 건물을 점거, 반독재와 함께 북괴에 동조하는 구호와 반외세를 주장하며 4일간 경찰과 대치하다 강제해산·연행됐었다.

그때에도 경찰은 이번 한총련 점거 시위 강제해산 때처럼 헬기를 앞세워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대항하는 농성학생 1,500명을 연행, 그중 1,27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사법사상 최대규모의 강경대응에 나섰으나 그 결과는 용두사미였다. 정식 구속기소된 400명중 90명만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고 나머지는 다 풀려나왔을 뿐아니라 정치권의 종용과 문교부(당시)의 징계 철회방침으로 관련학생들은 다음해 2학기때 대부분 복학했던 것이다. 그리고 건국대가 입은 피해 22억원 상당 보상문제도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져 학교측이 모두 부담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해에 6·29선언이 있었고 6공때인 89년 5월에는 부산 동의대사건이 일어나 학생들의 화염병 공격으로 전경들이 떼죽음 당한 것을 계기로 화염병 처벌법이 그해 7월 발효되기에 이르렀다. 그뿐이 아니다. 상전이 벽해가 될 정도로 세상이 달라졌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통일, 동구공산권 와해와 소련공산연방의 종식 등 민주·공산대결 역사의 종말이라는 역사적 변혁과 문민정부 출범이라는 새 지평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86년 10월에서 96년 8월까지의 그 엄청난 변화의 10년 세월 동안 우리 학생시위와 당국의 대응자세는 과연 어떻게 달라졌던가. 시대정신을 거역하면서까지 오히려 더 악화하고 뒷걸음질만 쳐 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년전엔 학생들도 어디까지나 반독재를 앞세워서야만 좌경구호를 외치기라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50년대로 되돌아가 민족해방 통일을 외치고 빨치산 진군가를 부르면서 남부군처럼 보급투쟁에 나서는가 하면 성동격서 전략과 역정보전술이 영락없는 공산혁명 도시게릴라다.

건국대 사태 당시 1,500명이 나흘간 점거 소란을 피웠는데 비해 이번엔 무려 9일간 6,000여명으로 점거난동 규모가 불어났음에도 유의해야 한다. 9일간 투쟁에 던진 화염병이 4,800개, 휘두른 쇠파이프가 3,000여개였고 50억원이상의 피해를 냈으며 총 5,848명 연행에 462명이 구속되기에 이른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해 주는가.

먼저 당국에 묻고자한다. 문민정부의 안보관과 대공산혁명적 학생운동 대처방안은 무엇인가. 그리고 구시대 청산과 역사바로 세우기란 것도 불과 10년전 사건의 교훈조차 잊어버린채 더 한층 무능과 무책을 드러내는 것으로 시종해서야 그 구호가 무색해지지 않는가. 구체적으로 한총련은 올들어서만 756회나 시위를 벌였고 6만여발의 화염병을 던졌는데도 서울도심에서 통일대축전을 벌인다며 그런 「도시게릴라」 대군이 한자리에 집결하는 것도 모른채 결과적으로 방치해온 우리 당국인 것이다.

지난 4월 남총련이 발대식을 할때는 도지사와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참석, 축사를 하고 격려금을 보낸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던 곳이 바로 이 나라임도 우리는 알고 있다.

더욱 한심스런 것은 연세대 농성 강제해산에 동원된 헬기가 옛 소련제 신예무기였다는 사실이다. 공산주의가 몰락돼 우리나라에 마저 빚대신 제공되는 옛 공산종주국의 무기가 이제는 자생적 공산세력 단속에 쓰이고 있는 이 기막힌 현실을 당국과 학생들은 이제라도 자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모사드와 같은 국가기관은 해외의 테러집단도 족집게처럼 잡아내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안보 50년」결의는 어디다 버리고 당국은 한총련 배후조종 주사파 조차 잡아내지 못한단 말인가. 그리고 문민화만 되면 모든게 걱정없다했던 자만은 이제 어디갔는가. 1986년 10월과 1996년 8월을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가 분명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새삼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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