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의 건들바람이 막바지 여름의 기세를 잠재웠다. 짜증나는 무더위와 소음속에서 그악스럽게 울던 서울 매미들의 소리도 수그러들었다. 도시의 매미들은 시골 매미와 달리 생체리듬이 깨졌는지 여름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댔다. 시멘트 전주, 도심 공사판에서도 울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어제쳤다. 도시 사람들처럼 공해에 찌들어 정서가 흐려진 탓인가. 갈수록 자연의 리듬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것만 같다.무덥고 긴 여름을 보내면서 여름의 정서와 자연력이 실종돼감을 느낀다. 여름의 토속적인 풀내음은 이젠 옛말이 돼간다. 요즘엔 여름 농산물, 청과물이라는 것도 따로 없다. 사철 시설재배와 강제배양으로 농산물이 아무때나 생산된다. 수박 고추 오이가 겨울에도 쏟아져 나온다. 빛깔과 겉모양 좋고 크고 양 많은 것을 찾다 보니 여름 농산물도 시설에서 속성재배되기 일쑤이다. 그러면서 대지는 계속 농약을 먹고 병들어간다.
농산물은 제철에 제땅에서 호흡을 하고 자란 것이라야 토속의 제맛이 나는 법이다. 그런 작물은 선천적 저항력이나 유전적 방어력도 강하다. 생명력 자연력이 우월한 것이다. 생명력 자연력이 강한 것을 먹고 자란 사람은 또 그런 체질을 갖게 된다고 한다.
불행히도 지금 사람들은 생명력이 약한 것, 가공된 것을 훨씬 많이 먹고 산다. 계절의 맛, 계절의 감각을 잊은 채 자연과 계속 멀어져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전적 방어력이 떨어지고 생명력이 약화해간다. 공해에 찌든 땅과 오염된 공간에서 사는 도시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도시아이들중에 나무에 못 올라가고 달리다 잘 넘어지고 참을성 없는 아이들이 많은 것도 자연력의 결핍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옛날 여름이 그립다. 지겨운 여름이 빨리 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가는 것을 아쉬워했던 그 시절 여름이 그립다. 옛 여름은 궁핍한 가운데서도 정취어린 토속의 내음과 풍성한 자연의 맛, 뜨거운 대지의 힘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었었다. 도시 어린이들이 여름의 뜨거운 대지에서 자란 싱싱한 녹색의 산물을 맘껏 먹고 도시의 매미들도 공해없는 녹지에서 자연의 흐름대로 우는 그런 여름이 올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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