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받아들이는 여유” 깊은 맛 솔솔책읽기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책을 읽는다거나, 이러이러한 책을 읽고 싶다, 라는 논리가 언제나 정돈되어있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은 어쩌면 의도적인 논리나 지향하는 의미 없이 가장 릴랙스한 상태에서 읽을 수 있을 때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제목에 「도를 말하다」 같은 것이 나오면 싫어할 수도 있다. 라즈니쉬의 강연이라고 한다면 더욱 싫증날 수 있다. 하지만 장자는 어쩔 수 없이 매력적이다. 내가 지금까지는 한 번도 장자를 본격적으로 읽어 본 일은 없지만 만일 사람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두 번 살 수 있다면, 치열하게 적응하고 경쟁에서 살아 남고 그리고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잠을 설치고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그리고 손가락 사이의 모래같은 한 순간의 삶을 위해서 아우성치는 절망 속에서도 적응하기 위해, 건강하기 위해 하루하루 무의식적으로 핏대를 올려야 하는 이 세상의 생 말고 또 한 번의 생을 살 수 있다면 그때는 소로우처럼,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처럼, 가난한 인도인처럼, 그리고 장자처럼 살고 싶다. 정말이다. 이 책을 읽은 다음에 문득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결국은 단 한 번의 생이란 아무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슬픈 마음도 들었다. 뜨거운 물에 아스피린을 두 알 먹고 깊이 잠들어서 장자의 책을 잊고 싶었다. 나는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란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진리라거나 도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일 테니까. 진리가 영원해도 그래도 사람의 삶은 거품이다. 장자는 그늘로 들어가고,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단편적인 대사들이 주는 메시지보다 더 깊은 맛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심오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맞게 씌어 있지는 않다.
그리고 재미라는 면에서 봐도,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 사랑에서 성공하고 돈에서 증권투자에서 정치나 입시에서 성공한 사람의 에세이보다 더 좋다.<배수아 소설가>배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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