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비전·철학없어 사고 혼란 초래/기성세대 도덕성 결여도 반발 요인/충격적 과격시위 전례없는 반국가적 변란한총련의 연세대 점거 폭력시위사태가 9일만인 20일 경찰의 진압으로 마무리됐다. 그동안 정부와 대학은 무엇을 했는가. 이번 사태의 진정한 수습책은 무엇인가. 홍일식 고려대 총장과 서영훈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회장의 긴급대담을 통해 이 사태의 의미를 분석하고 대책을 모색해본다.<편집자 주>편집자>
□참석자
홍일식 고려대학교 총장
서영훈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대표
▲홍총장=이번 연세대사태에 대해 학생들을 맡아 가르치는 대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부끄럽고 참담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정부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대학은 대학대로 각자가 남을 탓하고 원망하기 전에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자성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다 우리의 현실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를 냉엄하게 되돌아봐야 합니다.
▲서대표=홍총장님을 비롯해 학생들을 직접 맡아서 교육하는 많은 분들의 충격이 무엇보다 크겠지요. 저 역시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자 기성세대로서 책임감과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통일축전이라는 이름아래 진행된 학생들의 시위과정은 얼마나 조직적이고 계획적이었습니까. 대표를 평양축전에 파견하고, 평양에서 대규모 대중대회에 참석하고 그 중 상당수가 판문점에 와서 선동을 하는 일련의 과정은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살상용 무기나 다름없는 쇠파이프를 동원한 학생들과 공권력의 난투장면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얼마나 불안해 했습니까.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반역사적이고 반체제적이며, 반국가적인 변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오래 전부터 계속돼온 학생운동의 이런 흐름에 대해 이념적이고 사상적인 대처를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체사상이 얼마나 허망하다는 것을 기성세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세대들은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내 자식도 이렇게 생각하겠지」하는 아주 감상적인 믿음과 안일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6·25 체험세대는 반공이 체질화해 있지만 그 이후세대, 더구나 경제적 풍요속에 자라온 세대는 체험과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데도 말입니다. 학생들이 무분별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경도되는 것에 대해 그동안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대응해온 것입니다.
▲서=동감입니다. 우리는 사상 이념적으로 학생들을 교육시키지도 못했고 통일에 대한 비전과 철학, 어떻게 그것을 이루겠다는 방안의 제시가 없었습니다. 국민들이 보기에 정부의 통일정책은 일관성이 없어요. 대학에서도 교수들마다 견해가 제 각각이잖아요. 더욱이 민주주의를 하겠다던 정권들이 권경유착과 구조적 부정부패로 계속 비판받아온 현실이 청년들에게 사고의 혼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통일방안에 대해 당리당략이나 지방성을 초월, 원칙과 목표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대학들은 주체사상까지 연구해서 어디에 허점이 있고 모순은 무엇인지를 지적할 줄 알아야 합니다.
▲홍=학교에서 보고 느낀 것이지만, 요즘 젊은 학생들은 우리의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것에 굉장한 관심을 갖고 있어요. 소설 「동의보감」과 「토정비결」이 1백만권씩 팔렸고, 영화 「서편제」도 엄청난 인기였잖아요. 캠퍼스에서 함께 어울려 풍물놀이와 탈춤 판소리 등을 즐기기도 합니다. 사실 요즘 20대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런 것들은 서구지향적인 경제개발에 몰두해온 그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세대들에 의해 비과학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으로 철저히 부정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학에 들어온 젊은이들의 눈에는 기성세대들이 주체성도 없고 도덕적 정당성도 결여된 사람들로 비치는 겁니다. 그들은 오히려 민족적 정통성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에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령 「남한은 독립주권국이라면서 왜 외국군을 주둔하도록 하느냐」고 학생들은 간혹 질문합니다. 나는 「미군 주둔을 비주체적인 것으로 생각 말고 도난방지를 위해서 경비원을 고용하고 있는 것 정도로 생각하자」고 설득도 해봅니다. 그래도 단순논리에 사로잡힌 학생들을 설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NL파니 주체사상파니, 김일성사진 갖다 놓고 거기다 절하고 미국국기를 짓밟기까지하는 학생들은 그 생각을 바꾸기가 어려워요. 「오월대」니 「녹두대」니 「애국대」니 하는 핵심세력들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훈련된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대다수의 일반학생들을 설득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통일을 지상과제로 생각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통일에 대해 정서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순진한 학생들입니다. 거기엔 집단심리의 영향도 있었겠죠. 이들에게 우리가 추구하는 비전과 이상을 보여주고 세계화시대에 공산주의나 주체사상을 갖고는 경쟁에서 살아 남기 어렵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합니다.
▲홍=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 기성세대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첫째는 도덕성이 결여돼 있다는 겁니다. 이는 아이들에게 불신을 심어준 가장 큰 원인이죠. 또 하나는 주체성의 결여입니다. 기성세대는 경제성장이라는 목적추구를 위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렸고, 민족적 국가적 주체의식을 바람직하게 지켜오지 못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젊은이들로 하여금 기성세대와 기성체제에 대해 반발하도록 만든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에 대한 사고가 이러니 북한의 실정에 대해 아무리 말을 해도 학생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말을 믿게 하려면 결국 기성세대가 도덕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서=정부는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건강한 사회, 활력있고 질서 있는 민주시민사회, 모두가 사람답게 고루 잘 살 수 있는 문화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비전과 이상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아울러 통일된 국가는 독재와 빈곤이 없고 구조적 부정부패가 없으며 다시는 무력에 의한 동족상잔과 집단적 폭력이 없는 나라,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정체성과 주체성이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물론 북한의 체제변화가 있어야겠지만 우리도 인간성 타락, 구조적 부정부패, 대중문화의 저질화와 비윤리성, 집단이기주의와 지역감정, 분수없는 과소비 향락풍조, 환경파괴 등 내부문제를 해결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홍=자유민주주의는 자정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혼란스럽다고 해도 그 혼란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이번 사태 역시 자유민주주의가 자정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이를 계기로 국가는 국가가 나아갈 방향과 목표, 비전을 제시해 줘야 합니다. 정권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진로를 제시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통일의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 이후의 문제를 고민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해요. 지금 많은 국민들이 과소비 사치 허영과 허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국가의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가. 난 지금이야 말로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율곡선생의 10만양병론이 새삼스러워집니다. 1904년 러일전쟁때 고종은 내외에 중립을 선언했었습니다. 힘이 없는데 중립이 지켜집니까. 그러니 분단상황을 불리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찾아 해야 합니다. 통일이후에는 국제여론이 그냥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과소비와 낭비에 쏟는 정력과 힘을 국가의 힘을 기르는 쪽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서=세계화시대, 정보화 시대를 맞아 확고한 민족적 정체성을 토대로 새로운 세계질서 건설에 앞장서는 데는 북한보다는 대한민국이 잘 할 수 있다는 신념을 학생들에게 심어줘야 합니다. 21세기에 부끄럽지 않은 민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통일운동입니다. 이번 사태는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대오각성하는 좋은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정리=변형섭 기자>정리=변형섭>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