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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정구영 서울여대 총장(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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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정구영 서울여대 총장(한국논단)

입력
1996.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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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텁지근한 여름날씨 못지 않게 마음도 후텁지근하다. 소득 1만달러시대를 과시라도 하듯 연일 해외관광이니 여름휴가니 하고 들떠 있으나 개운한 소식은 커녕 답답한 소식들이 줄을 이어 등장하고 있다.TV 화면에 비쳐진 골짜기마다 널려 있는 각종 쓰레기와 파리떼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광란의 밤을 겪어낸 해변 백사장의 볼꼴 사나운 모습이 또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대청호에 사상 최초로 녹조발생경보가 내려졌다. 뒤질세라 팔당호에서도 녹조가 발생하고 낙동강수계 등 전국의 하천과 호수에도 녹조현상이 급격히 퍼지고 있어 식수파동이 우려된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려온다. 시화호 오염문제로 한동안 떠들썩하더니 급기야는 생명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망둥이가 수만마리 떼죽음을 당한채 떠올랐다고 하니 마음이 심히 답답하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곳으로 판정이 나서 살던 사람도 떠나야 할 판인데 느닷없이 공해로 얼룩진 여천공단주변은 갑자기 늘어난 전입자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웃지 못할 서글픈 소식도 또 한 몫 끼어들었다. 도대체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우리 인간들은 어느 정도까지 되어야만 정신 바짝 차릴 수 있을 것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애급이라든지, 인도, 중국의 황하상류 등 고대 문명의 발상지였던 땅들이 고갈되고 오염되어 망하는데 몇 천년이 걸렸으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울창한 밀림의 나무들을 마구 베어 팔아 민둥산이 되고 그 결과 땅은 점점 황폐화해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다 못해 국경을 넘나들게까지 되는 데는 불과 100∼20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자원고갈이나 오염의 속도가 가속도적으로 빨라져 가고 있다는 데 있다.

○오아시스의 교훈

오아시스에 조그만 오두막을 짓고 솟아나는 수정같이 맑은 샘물을 오고 가는 나그네들에게 제공해주며 살던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고 한다. 목마른 나그네들에게 맑은 샘물을 나누어주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는 이 할머니 덕분에 갈증을 해소하게 된 나그네들이 감사해서 한 푼 두 푼 동전을 놓고 갔으나 돈에 별로 관심이 없던 할머니는 무심코 그 돈들을 자루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자루에 돈이 가득 넘치게 되자 또 한 자루의 돈을 갖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되었고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제는 노골적으로 나그네에게 돈을 요구하게 되었다.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불러 일으켜 밤에 잠도 잘 자지 못하면서 샘물을 지키게끔까지 되었다. 혹시나 돈줄이 되는 샘물이 줄어들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중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다가 샘물 곁에 우거져 있는 야자수 잎사귀마다 물방울들이 흠뻑 맺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야자수들이 자신이 깜빡 잠이 든 사이에 밤이면 밤마다 자신의 그 소중한 샘물을 축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이 할머니는 당장 도끼를 가져다가 야자수들을 몽땅 베어 버리고는 더 많은 샘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막의 뜨거운 바람과 햇볕 때문에 그나마 있던 샘물까지도 다 고갈되어 버렸고, 야자수그늘도 없으니 나그네들도 오지 않게 되었고 급기야는 이 할머니도 갈증과 내리 쪼이는 햇볕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한 푼도 가지고 떠날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이 할머니는 그토록 물불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려고 했을까.

○베어낼 것은 욕망

오아시스에 살고 있던 할머니의 이야기는 매우 단순한 우화처럼 보이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그저 어린아이들이나 깨우쳐 줄 목적으로 쓰여졌을 뿐이라고 가볍게 넘기고 지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뻔히 알고 있는 것을 가슴으로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

욕망에 관한한 사람은 짐승만도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 어느 사회학자의 글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짐승은 일단 배가 부르면 먹던 것도 그대로 남겨두고 가지만 사람은 상상적인 수요라는 것이 있어서 내일 것도 챙겨야 하고 내년, 아니 죽을 때까지, 더 나아가 자식, 손자, 증손자, 현손자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잘 먹고 살 것을 끊임없이 챙기려는 욕망이 있어 그 무한정한 욕망에 눈이 먼 나머지 땅도 강도 바다도 공기도 그저 닥치는대로 거침없이 황폐화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진정 더 멋지게 잘 살아보고 싶다면, 마르고 닳도록 자손 대대로 영원히 잘 살아보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짐승보다 못한 파괴적인 욕망은 과감하게 베어 버리고 오아시스의 야자수는 오히려 더 정성을 들여 가꿀 수 있는 생활의 지혜를 터득하고 실천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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