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플로리다해안에서 불과 100㎞정도 떨어져있는 대서양의 외딴섬 쿠바가 공산주의체제를 지켜가고 있는 것을 보면 경탄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쿠바는 7월26일 공산혁명 37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바티스타독재정부에 맞서 공산혁명을 성공시킨후 37년동안 절대권력자로 군림해온 피델 카스트로는 이때 막 70회 생일을 맞았던 것인데 여전히 『사회주의 아니면 죽음』이라는 구호를 외쳤고 쿠바는 그런 카스트로를 지도자로 받들면서 그런대로 안정된 체제를 유지해 가고 있는 것이다.쿠바는 소련경제가 밑바닥세로 달리던 70년대에 이미 자멸할 것이라는 추측들이 나돌았다. 비싼값으로 쿠바 설탕을 사주고 낮은 값으로 석유로 팔아주던 소련이 경제난으로 더이상 경제지원을 하지 못하자 쿠바설탕은 당장 수출길이 막혔고 트랙터 자동차 항공기는 가솔린이 없어 운행하지 못한채 길바닥에 서 있는 광경이 많이 목격됐다.
소련이 망한후 쿠바는 많은 보트피플을 생산해 냈다. 가난을 피해 거의 공공연히 조각배를 만들어 타고 목숨을 건 항해를 한후 마이애미해안으로 집단 탈출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련공산체제가 무너진후에도 쿠바는 용하게 살아남았다. 지난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를 따는 등 여전히 세계 체육 10대 강국의 위상을 떨치기도 했다.
96년들어 쿠바경제는 오히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소련붕괴이후 소규모 자영업을 인정하고 달러화 거래를 부분적으로 허용한 것이 효과를 발휘해 96년도 상반기중 국내생산이 9.6% 성장을 이룩했다. 카스트로의 건강은 괜찮은 편이며 적어도 카스트로가 생존하는 한 쿠바는 공산주의체제를 그런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카스트로체제를 지지하는 주요층은 중년층이다. 이들은 59년 하바나대학 법과대학생이던 카스트로가 바티스타독재정부에 반기를 들던 기억을 생생히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미국인 작가 찰스 라이트 밀스가 쓴 바티스타정권 당시의 쿠바상황을 서술한 책 「들어라 양키들아」에는 쿠바인들이 못된 서구자본가들과 결탁한 독재정부아래서 얼마나 시달려왔는 가를 대충 짐작할 수 있게 해놓고 있다.
해변이란 해변은 외국인 전용비치가 됐고 쿠바인들은 창녀나 하인밖에 비치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쿠바는 부패천지였다. 사회주의를 부르짖는 카스트로의 주장은 당시 많은 쿠바청년들의 마음을 붙잡았던 것이다. 이 혁명세대들이 아직은 카스트로 독재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은 61년 한차례 기습작전을 편 이후 무역금지조처를 취하는등 분명한 반 카스트로입장을 펴오고 있으나 적극적 전복정책은 펴지않았다. 세월을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북한도 쿠바와 함께 소련붕괴후 살아남아있는 두개 뿐인 공산정권중의 하나다. 이 두 공산정권은 가난해질 대로 가난해 졌다는 점과 철저한 독재를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이다.
다른 점은 첫째 북한은 자본주의를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했고 둘째 공산주의를 전쟁과 간첩공작을 통해 끈질기게 남한에 확장하려하며 셋째는 쿠바는 해외로 도망할 자유는 허용되고 있는 반면 북한은 인민을 철저히 국가폭력으로 묶어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의 몰인간주의는 결국 가난이라는 형벌을 받아 세계 곳곳에서 죽어갔다. 남아있는 이 두 공산정권이 언제 멸망할지는 세월을 두고 지혜롭게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정일화 편집위원 겸 통일연구소장>정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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