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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꿇은 공권력/이종구 사회부장(데스크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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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꿇은 공권력/이종구 사회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6.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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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난 사진 한장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에서 뭔가 울컥하고 치밀어 오른다. 분개다. 전경이 무릎꿇고 두손으로 빌고 있다.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쇠파이프를 든 학생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또래의 그 전경은 두려움에 가득차 있고, 학생들은 의기양양하다. 그 사진은 말을 한다. 공권력이 무릎을 꿇고 있다고. 나이든 사람들은 피란시절 어딘가에서 보았음직한 장면들을 연상하며 섬뜩해 했을지도 모른다.며칠전 TV 화면에서 본 매우 착잡한 광경이 떠오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들을 붙잡고 혼신의 힘으로 애원을 한다. 아들은 막무가내로 뿌리치고 있다. 그 아들의 표정은 묘했다. 그리 심각하지도 않아 보였고 멋쩍은 듯한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그 아들은 끝내 북으로 가고, 어머니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만 흘리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왜 베를린까지 날아가 북으로 가는 아들을 만류했을까. 어버이의 마음을 아들은 알까.

그 아들이 며칠뒤 노동당 간부들과 함께 판문점에 나타났다. 남쪽을 향해 뭔가를 읽은뒤 김일성 동상에 꽃다발을 바쳤다. 그 아들의 북한행을 끝까지 말린 어버이의 심정을 그래서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아들은 이념의 꼭두각시인가, 아니면 「견결한 혁명투사」인가. 유감스럽게도 그는 치기어린 이념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이념의 꼭두각시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많이 있다.

한총련의 태도는 오만하다. 제마음대로 대표를 입북시키고 도로를 점거하며, 며칠째 상가의 문을 닫게 하고, 마침내는 공권력을 무릎 꿇리고 있다. 한총련 시위대는 자신들이 중남미 국가의 무슨 혁명군으로, 아니면 임꺽정이나 장길산의 패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궁금하다. 모습이 자못 비장하다. 그러나 이곳은 허술한 중남미도 아니며, 지금이 조선조 시대는 더욱 아니다.

그러나 비장한 모습의 그들을 보면 서글프다. 청바지에 등백을 둘러멘 발랄한 차림의 여대생들이 시위현장을 뜀박질하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 서글프다. 그들은 왜 일편단심 북쪽의 편만 들고 있는가. 왜 한번도 그 체제 밑에서 시달리는 인민의 편을 들고 있지는 않는가. 북의 체제가 그처럼 이상향인가.

한총련을 대학생의 조직체라고 해서 안일하게 볼 일도 아니다. 일사불란하게 시위대를 움직이고,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다루는 폼이 예사롭지가 않다. 시위현장에 무전기까지 동원한다. 기습에도 능하다. 상대적으로 경찰이 오합지졸처럼 보인다.

왜 30여년간 끊임없이 학생운동이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잘못된 풍토 때문이다. 학생운동이나 이념투쟁 전력에 대한 미화가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치적으로 입신한 많은 인사들이 「운동권 출신」이다. 지금 한총련을 주도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아마 자신의 미래좌표를 그쪽에 두고 있을 터이다. 한때 「붉으스레 하다」고 평을 받던 인사들이 지금은 여·야의 유력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도 꽤 많다.

한총련 행사는 더이상 학생운동이 아니다. 이념투쟁이다. 이념투쟁의 싹이 자라지 않도록 그 배양토를 가급적 줄여야 한다. 그들에게는 관용의 제스처를 쓰지 말아야 한다. 이념은 질긴 것으로, 민족화합으로 운위되는 정치적 사안과 다르다. 이인모 노인의 전철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를 올곧은 비전향 장기수로 미화시킨 사람들이 더러는 있었다. 며칠 사이 서울사람들은 교통난에 많이 시달렸다. 한 시민이 불만을 터뜨린다. 『저 사람들이 서울 도로를 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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