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 떠나 극락으로 빨려들어가는듯…/국내 최대 법당 각황전 웅장함엔 위압감까지구례 화엄사는 지리산하면 떠오를 만큼 크고 이름난 사찰이다. 백두대간의 마지막 지맥인 노고단이 거대한 파도처럼 굼실거리며 흘러내려 멈춘 길상봉 아래 자리한 이 절은 주변의 수려한 산세에 화답을 하듯 웅장한 건축미가 일품이다.
특히 일주문에서 금강문 천왕문 보제루까지 이어지는 직선형 진입공간에는 건물들이 조금씩 각도를 달리하며 배치되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점점 사찰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사적기에 따르면 화엄사는 554년 신라 진흥왕 5년에 인도에서 온 승려 연기조사가 세웠고 선덕여왕 11년에 자장율사가 중창했으며 통일신라기에는 의상대사가 각황전의 전신인 장륙전을 짓고 건물의 벽은 화엄석경으로 장엄했다고 한다. 하지만 화려했던 옛 영광은 임진왜란때 왜적들에 의해 모두 잿더미가 되었고 인조때 벽암선사와 숙종때의 계파선사의 노력으로 다시 이루어진 모습이다.
화엄사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국보 제67호인 각황전. 이 건축은 정면 7칸, 측면 5칸에 2층으로 이루어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법당이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2층이지만 내부는 툭 터진 통층으로 되어 있어 겉모습 못지않게 내부구조도 장엄하다. 처음의 이름은 장륙전이었으나 조선시대 숙종때 중창하면서 각황전이란 이름을 하사받았다. 지리산의 굳센 지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빠뜨릴 수 없는 화엄사의 성보는 효대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4사자 3층석탑이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세웠다는 이 탑은 불국사 다보탑과 함께 통일신라때 만들어진 대표적인 이형석탑으로 꼽힌다.
네마리의 사자가 다소곳하게 쪼그리고 앉아 머리위에 탑을 이고있는 발상이 기발할 뿐만 아니라 그 사자의 표정에는 인간세상의 희노애락의 감정이 표현되어 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교통편은 남부터미널에서 구례가는 버스를 타고 구례읍에서 화엄사가는 군내버스를 탄다.<이형권 역사기행가>이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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