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정서 사실적 기법 묘사/백인 중심 할리우드에 반기미국 영화계에 흑인이야기가 「정론」으로 제대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알고 보면 1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동안 흑인에 관한 주제를 담은 영화가 있었다 해도 다분히 백인적 관점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이같은 풍조는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39)의 등장으로 보기 좋게 깨져 나가기 시작한다. 「그녀는 다 필요해」(She’s gotta have it)라는 흑백영화가 할리우드에 일격을 가하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것은 86년이었다. 이 영화는 리의 데뷔작이자 미영화에 「흑인영화」라는 장르를 하나 더 보탠 문제작이었다. 당시 리는 뉴욕대학에서 영화학 석사를 마친지 3년밖에 되지 않았던 29세의 열혈청년. 이 영화로 그는 그해 칸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고 이어 700만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영화는 젊은 흑인여성이 각기 다른 유형의 세 남자와 교유하는 내용이 기본 플롯. 뉴욕 브루클린 자신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반경 30㎞내에서 12일만에 찍은 작품이지만 흑인의 정서와 행동양식을 이만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은 일찍이 없었다.
92년 「말콤X」를 비롯, 리는 그동안 거의 해마다 한편씩의 작품을 내놓았다. 작품마다 백인사회에 대한 저항의식, 흑인사회에 대한 스스로의 각성 등의 주제가 사실적 기법으로 강렬하게 전달된다. 흑인사회에 대한 그의 기본시각은 『모든 문제는 노예사에서 비롯된 굴종의 타성에서 비롯된다』는 것. 흑인예술가들간의 경제적 연대를 통해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지난해 9번째 작품 「걸 6」(Girl 6)를 내놓았다. 유료 섹스전화 교환원으로 살아 가는 영화배우 지망의 흑인여성을 그린 이 영화를 두고 할리우드와의 타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떤 경우든 그가 21세기 할리우드의 리더군에 속하는 것은 분명하다.<뉴욕=조재용 특파원>뉴욕=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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