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성 무시 사업결정·날림설계 일쑤/업체들 잇속 챙기기·제도 무방비 공범/유령자격증 판치고 「마지노선」 감리 유명무실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의 부실은 날림시공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병폐에서 비롯되고 있다. 설계 시공 감리의 건설공정을 관할하는 발주자(정부)와 시공업체, 감리자들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부실시공은 당연한 결과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80년대말과 90년대초 집중적으로 사업이 시작된 대부분의 대형국책사업은 사업현장의 특성과 사업의 타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결정됐다는데 정부관계자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이에따라 사업현장의 지역적 특성과는 동떨어진 졸속설계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사업현장에서는 공기에 쫓기면서도 이를 시공에 적용할 수 있도록 고치느라 안전시공은 뒷전인 실정이다. 경부고속철도 궁현터널 공사현장의 한 관계자는 『정부측이 당초 내려보낸 설계도가 워낙 부실해 설계도대로는 공사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면서 『설계에 대해서는 전문지식이 없는 현장인력들이 그때그때 설계를 바꿔 시공하고 있어 안전시공을 자신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경부고속철도사업을 관할하고 있는 한국고속철도공단이사장에 지난 3월 취임한 김한종씨는 설계상의 숱한 문제점을 발견, 직원들이 배석한 자리에서 크게 분개하고 설계상의 문제점을 인정할 정도로 부실설계는 위험수위에 와 있다.
날림설계에 설상가상격으로 시공업체들의 무리한 「잇속 챙기기」와 제도적무방비도 부실을 자초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서해안고속도로 등 국책사업현장에도 부실을 낳을 수밖에 없는 원도급액의 20%안팎의 초저가하도급이 횡행하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80년대초 하도급발주가 심사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면서 하도급액도 사실상 규제를 받지 않게 돼 힘없는 중소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대형업체들로부터 초저가하도급을 받아 사업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은 하도급을 주지 않고 직접공사를 할 경우에도 발주자로부터 받은 도급액의 일정액을 「순수익」용으로 우선 떼어놓고 「실행예산」으로 불리는 나머지 금액만으로 공사를 마치도록 현장소장등에게 강요하고 있어 안전시공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건설업체들은 대부분 원도급액의 15%안팎을 먼저 챙겨놓고 공사를 하고 있다』면서 『현장소장들은 옷을 벗지 않으려면 이를 뺀 자금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어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했다. 안전과 직결되는 현장인력(기능사)관리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설계와 시공업체가 부실하더라도 현장인력이 제역할을 하면 최소한의 안전은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건설업계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그러나 철골 콘크리트시공 등 건설 각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갖춘 숙련기능공을 구하기가 극히 어렵다는 것이 건설업체들의 한결같은 푸념이다.
또 현장시공을 맡고 있는 2만여 전문건설업체들은 분야별로 숙련도가 높은 유자격 기능사를 2명이상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고 있는 업체는 전체의 41%선에 불과하다(건교부 집계). 절반이상의 업체가 책임의식과 전문지식은 차치하고라도 무자격자를 통해 현장시공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 최근에는 1백10여개 업체들이 인건비절감 등을 노려 이미 사망한 건설기술자의 자격증을 빌려 영업을 해온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건설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현장시공이 「무법 부실지대」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건교부는 특히 삼풍사고 이후 기능인력의 중요성을 인식, 지난해 8월부터 기능인력도 5년에 2주이상 재교육을 받도록 했으나 최근에는 업체들의 로비에 밀려 재교육제도실시 1년도 되기전에 교육기간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기능인력들이 교육을 기피하는 등 일관성없는 정책으로 부실우려를 높이고 있다.
부실을 막을 수 있는 「마지노선」인 감리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안전시공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국책사업현장에 감리자의 수는 많아졌으나 질은 과거와 같다는 것이 현장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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