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경제력 집중 논란 매듭을”/공기업 민영화 문제 등 민감 사안 줄줄이 대기/신재벌정책 정치논리 지배땐 “종이호랑이” 전락재벌을 빼놓고 한국경제를 설명할 방법은 없다. 재벌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고 재벌이면 못할 것이 없는게 현실이다. 막대한 생산·투자·고용을 창출하는 성장 견인차이면서 중소기업몰락과 분배왜곡, 불균형성장의 원인제공자이기도 한 재벌은 우리경제의 선이자 악이고, 음이자 양인 것이다.
「거대한 공룡집단」의 처리는 역대 어느 경제팀에건 최대 현안이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손댈지 모르고 누구도 손대기 싫어하는 「뜨거운 감자」인 탓에 재벌문제의 해법은 항상 숙제로 남을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새 경제팀은 더이상 재벌문제를 비켜가기 어렵게 되어있다. 현정부 주요개혁작업중의 하나인 신재벌정책 완성과제가 부여됐기 때문이다. 경기침체와 양극화의 이중고에 허덕이는 중소기업보호를 위해서도 경제력집중해소는 시급하다. 특히 공기업민영화, 사회간접자본(SOC) 민자사업자선정, 현대그룹 제철업진출등 민감한 사안들이 줄줄이 최종결정을 기다리고 있어 경제팀으로선 어떻게든 경제력집중논란의 논리적 매듭을 지어야할 형편이다.
전임 경제팀이 추진해온 신재벌정책은 ▲규제는 공정거래법으로 일원화하고 ▲세부 사전제한조치(진입·여신규제)는 가급적 철폐해 기업활동자유를 보장하되 ▲경영투명성확보를 위한 오너견제장치와 ▲부의 대물림차단을 위한 세제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경제팀 교체로 재벌정책기조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게 일반적 관측이다. 신재벌정책은 한국적 재벌구조의 핵심인 「오너 일인지배체제」를 직접 겨냥한다는 점에서 재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 이미 논리적 타당성과 정서적 공감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새로 구성된 재벌정책멤버들의 성향과 역학관계를 놓고 보면 신재벌정책의 추진주체와 강도, 공기업민영화와 진입장벽철폐등 각론적으론 상당한 변화가 점쳐진다.
우선 한승수 부총리는 반재벌론자가 아니다. 89년 한국중공업 민영화논쟁 당시 상공장관이던 한부총리는 『민영화는 효율의 문제이며 재벌이라고 배제할 수는 없다』는 논리로 경제력집중 부작용 때문에 민영화를 반대했던 조순 부총리에 맞선바 있다. 비록 한부총리가 신재벌정책의 지속방침을 밝혔더라도 도덕·정서보다 경제효율에 입각한 그의 「온건한」 재벌접근법은 공기업민영화 국책사업자선정등 향후 재벌관련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재벌규제에 남다른 소신을 갖고 있는 김인호 공정거래위원장은 기획원 차관보 시절 한중민영화에 적극 반대, 한부총리와 매우 불편했던 경험이 있어 재벌정책추진에 관한 두 사람간의 향후 관계가 매우 주목된다.
이석채 경제수석은 재경원차관으로 신재벌정책 골격형성에 간여했고 재벌의 해외탈출제동장치(해외투자규제)를 고안하는등 경제력집중, 특히 재벌의 탈정부적 행태에 관한한 「매파」로 분류된다. 장관급 강성경제수석 등장으로 재벌정책의 중심은 ▲내각에서 청와대로 ▲청와대안에서도 정책기획수석실에서 경제수석실로 옮겨질 확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재벌정책은 언제나 이중적이다. 경제적으론 규제대상이나 정치적으론 포용대상도 된다. 한부총리와 이수석의 재벌관의 차이에도 불구, 「현실주의자」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신재벌정책의 고강도 경제력집중억제 「원칙」에도 불구, 「운용」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채찍(재벌조이기)과 당근(재벌끌어안기)이 선택적으로 구사될 전망이다. 그러나 우려대로 정치적 상황논리가 지배한다면 신재벌정책은 결국 경제력집중도 문어발확장도 중소기업몰락도 막지 못하는 소리만 요란한 「종이호랑이」에 그칠 것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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