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점 지적없이 단순한 중계역 아쉬움으로1996년 8월5일은 우리 국민과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남긴 날이었다. 바로 「12·12」와 「5·18」사안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안은 16년전 우리나라의 헌정사를 바꾸어 놓았던 사건으로 우여곡절을 거쳐서 겨우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96년 3월11일 역사적인 제1차 공판이 열려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한 법정에 전직 대통령 두사람이 동시에 선 것은 역사적으로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차공판부터 이날 구형공판에 이르기까지 거의 5개월이 걸린 재판에 국민들은 초기에는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으나 지루한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으로 시들해지다가 올림픽기간에 이르러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번 공판에서 두 전직 대통령중 한사람은 「사형」, 다른 사람은 「무기징역」을 구형받고 그외 관련자들은 「무기징역」부터 「징역 10년」에 이르기까지 죄질에 따라 형량이 구형됐다.
한국일보도 이 구형재판과 관련하여 「전두환씨 사형구형」 「노태우씨는 무기」의 주표제와 「반란·내란·뇌물수수 혐의 등 적용」 「정호용 피고인 등 14명 무기∼10년」의 부표제로 시작되는 1면 톱기사에서부터 사회면 톱기사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다뤘다. 「12·12 및 5·18 재판 검찰논고문 전문」 「변호인들의 최후변론 요지」를 게재했으며 「재판의 과정」 「구형배경」 「재판의 전망」 「각계의 반응」을 실었다. 나아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검찰논고문 내용분석」 「12·12 및 5·18 핵심쟁점들」 「구형의 의미」등의 해설기사를 덧붙였다.
이러한 기사를 통해 구형재판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 독자들이 12·12 및 5·18에 대해 좀더 정확히 알 수 있게 했다. 특집 및 해설기사는 적절한 판단을 내리도록 도와주었으며 이 사안이 지닌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음미하게 했다. 그러나 이렇게 자세하고 상세한 보도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개선돼야 할 사항이 있어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이 사안을 지나치게 형량위주로 보도했다는 점이다. 물론 보도가 구형재판에 대한 것이고 구형량이 중요한 이슈이긴 하나 형량만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취급하면 이 사건이 지니는 의의나 정치·사회적인 의미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더욱이 두 전직 대통령의 형량차이의 근거에 대해 충분한 정보가 없으며 신문사 나름의 지적도 없었다.
둘째, 다소 과다하게 두 전직 대통령의 최후진술이나 반응에 집중했으며 그것을 통해 두사람 사이의 퍼스낼리티 차이를 크게 부각시키고자 한 점이다. 그러면서 한사람의 「당당함」에 은근히 지지를 보내며 다른 사람의 「나약함」에 실망한 듯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기사에는 「…전피고인은 법정에 들어오면서 평소처럼 옅은 미소를 띤채 담담한 표정이었으나 노피고인은 상기된 표정으로 입장했다」 「전씨는 논고문이 낭독되고 있는 동안…재판부만 올려봤을 뿐…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노씨는…자신의 범행사실이 낭독되자 얼굴이 상기됐다」라고 돼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묘사는 사안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인간성에 대한 흥미위주의 기사라고 하겠다.
셋째, 재판진행상의 문제나 검찰논고가 지닌 문제점에 대한 신문사 나름의 의견개진이 별반없이 검찰의 논고를 단순히 중계해 주는데 급급했던 점이다. 이 사안은 역사적 사건으로 정확하고 명확한 사실인식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구형이 결정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논고문을 상세히 읽어보면 「반성이나 정상참작」이라는 부분이 형량의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에 대한 적절한 지적이 없어 아쉬웠다.
넷째, 「50개의 별이 한 법정에」 「33차례 최다공판 5개월새 단숨에」 「수사기록 1.5톤 트럭분…방청권 거액거래」와 같은 흥미성 위주의 특집기사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는 있으나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가볍게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요컨대 이 사안은 그것이 지닌 역사성이나 사회성보다는 구성요소들이 지니고 있는 흥미성 호기성 의외성 갈등성 등만이 부각된 채 총체적인 구조속에서 다뤄지지 못한 것 같다. 우리의 역사에서 더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주요사안은 적절한 양만큼 주목을 받아야 함은 물론 사회·역사적 구조속에서 역사적 의의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도돼야 할 것이다.<백선기 경북대 교수·미 미네소타대 신문학박사>백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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