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속에 떠돌던 음유시인의 익살·해학 은은히…영월읍에서 남한강을 따라 하동면 소재지 옥동리를 지나면 길가에 「김삿갓 상회」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허름한 농가에 차려진 구멍가게인데 이집 뒤쪽으로 난 가파른 산길을 거슬러 올라 7㎞쯤 계곡을 타고 가면 와석리 노루목에 이르게 된다.
이런 깊은 산골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봉우리가 첩첩한데 드문드문 민가가 이어지고 마대산 양지바른 언덕받이에 한 시인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죽장짚고 구름을 벗삼아 한평생을 떠돌아다니며 살았다는 이 시인의 이름은 김병연이다.
22세 때 집을 나서 57세의 나이로 낯선 타관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정처없이 떠돌던 일생이었으니 세속적인 가치로 보면 그의 삶은 더없이 쓸쓸하고 불우했다. 하지만 동서고금에 그처럼 평생을 떠돌았던 음유시인은 없었으며 풍자와 익살 해학의 필봉을 휘두르고 인생의 깊은 우수를 노래한 시인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소문처럼 무성한 그의 겉모습만 알고 있지 그 무량한 시의 깊이와 삶의 고뇌는 헤아리지 못한다. 133년전의 일임에도 그가 살았던 자취와 무덤마저 아는 이가 없었는데 다행히 10여년전 이 무덤과 집터가 확인되어 나그네의 발길을 머무르게 한다. 몰락한 집안의 내력을 모른 채 산골마을을 전전하며 성장한 스무살의 젊은 선비 김병연은 영월 백일장에서 홍경래에 항복하여 목숨을 구걸한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를 탄핵하는 시를 지어 장원을 하는데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임을 알게 되어 큰 충격과 상처를 받게 된다.
그후 깊은 산골로 은둔한 곳이 노루목의 어둔마을이었고 이듬해 가족들을 남겨 놓은채 방랑의 길에 나서게 된다. 바람처럼 떠돌다 전남 화순지방에서 객사했는데 그의 둘째아들 익균이 수소문하여 그곳에 있던 무덤을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교통편은 동부고속터미널에서 영월행 시외버스를 타고 영월에서 다시 와룡가는 버스를 타고 김삿갓 상회앞에서 내려 걸어간다.<이형권 역사기행가>이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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