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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적 예술가(천자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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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적 예술가(천자춘추)

입력
1996.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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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까운 후배가 걱정을 토로하며 상담을 요청해왔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의 부모가 두 사람의 결혼을 한사코 반대하신다는 것이다. 반대이유는 사위될 사람이 예술가라서 곤란하다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화가는 과연 누굴까? 나는 단연 국내는 이중섭, 외국인은 고흐를 주저없이 말하고 싶다. 일반인이 모두 좋아하고 아끼는 예술가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가 이상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들의 삶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 심지어는 위인전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소위 예술이라는 것을 위하여 골방에 틀어박혀 창작에만 몰두하며 광기에 사로잡혀 처자식이 굶어 죽든 어디서 돈을 빌려 오든 상관하지 않고 혼자의 일만 한다. 그들의 외모는 깡마르고 텁수룩한 얼굴에 엉뚱한 곳에는 상당한 멋을 내는 것으로 전형화해 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또 인정해주지 않음으로 인하여 반사회적이고 비인륜적인 행동을 아무 가책없이 자행하는 이들 예술가는 환공포증 환청 환각등의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분열병적 정신상태에서 결국에는 자살하거나 정신병원에서 죽어가는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인 이기주의자의 모습 그 자체이다. 설사 그들이 인정받아도 사후에나 일어나는 일이고 그들의 아내는 헌신과 인내심으로 평생을 바치거나 중도에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는 성실하고 가정적이고 노동의 가치와 사회에 대한 예술가의 위상과 역할을 알고 있는 성실한 생활인이다. 사회와의 접촉과 인간관계에서 힘을 얻는 그런 사회인이다. 세잔같은 화가는 아침에 도시락을 싸서 작업실에 출근하고 하루 종일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저녁에는 하루를 마감하는 기도를 아주 경건하게 올리는 삶을 평생 살았다고 한다.

현대의 예술가는 전형적인 낭만주의적 예술가처럼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반사회적이지도 않다. 가난하여 처자식을 굶기지도 않으며 비상식적인 여성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드라마틱하고 허위의식에 가득찬 예술가의 전형이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바꿔지지 않는한 후배의 고민은 또 다른 후배에게로 이어질 것이고, 빵모자를 쓰지 않고 수염을 기르지도 않고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직장을 가진 나는 영원히 예술가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권여현 서양화가·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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