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개방과 관련해서 우리가 늘 걱정해 온 것은 수습할 수 없는 금융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이로 인해 통화 환율 금리등 전통적인 정책수단들이 전면적으로 무력화하면서 경제 전반에 걸쳐 통제 불가능한 위기적 현상이 초래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멕시코 사태를 유심히 눈여겨 보면서 그 전철을 밟지 말자고 거듭 다짐했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개방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추세이고 국민적 합의이기도 하며 금융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어느 분야건 개방의 폭과 속도는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조절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미세하고 치밀한 준비 검토 없이 덜컥 열어 버리는 무대책 개방이나 경제적 이유와 논리가 없는 무조건적 개방지상주의는 곤란하다. 어떤 과시적 효과를 노린 정치적 개방도 경제에는 병이 된다.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내가입을 위해 내놓은 자본시장 추가 개방계획은 이런 점에서 볼 때 무리한 과속개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 수준의 개방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에 경제적 논리가 없다. 이 정도는 열어놓아도 별 탈이 없을 거라는 대응논리에도 설득력이 없다. 단지 OECD가입에 집착해서 서둘러댄다는 인상만 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금차관 등 투기성 핫머니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너무 많이 열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부터 상업차관이 허용되는 제조업 부문 외국인 투자기업이 무려 3천5백여개나 된다. 98년부터 대기업 무보증사채에 대한 직접투자가 허용되고 1인당 주식투자 한도도 2000년까지 10%로 확대된다. 99년까지 수출선수금 영수한도가 폐지되고 내년부터 사회간접자본 민자 국책사업에 현금차관이 허용된다.
국내외 금리 낙차가 2배 가까이 돼 엄청난 유입압력이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수문을 열어놓고도 국내시장의 외자범람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강력한 투기성을 띤 거대한 뭉칫돈이 당국의 통제권역 밖에서 마음대로 들락거릴 경우 그 충격과 혼란을 어떻게 감당할 생각인지 걱정이다.
금융시장의 교란과 경제상황 전반의 만성적 불안은 물론이고 통화팽창에 따른 물가상승, 환율절상에 의한 경쟁력 약화, 차관수혜 기업과 중소기업 등 다른 분야간 격차와 특혜시비 등등 예상되는 부작용과 폐해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차분한 검토와 대비 없이 서둘러 문을 열겠다는 것은 비논리적이고 비경제적이며 불합리하고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OECD가입은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고 늦춘다고 해서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니지만 대책없이 서두는 과속 개방은 너무도 많은 불안과 위험을 안고 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준비없는 과속개방으로 우리 경제가 통제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드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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