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다 값진 은」 남기고 “필드여 안녕”/소외종목 설움·냉대 정열로 극복/“후배들 좋은 환경서 운동했으면”【애틀랜타=올림픽특별취재단】 그도 이제 떠난다.
한국 여자하키의 간판스타 장은정(26·한국통신). 득달같은 세월의 흐름에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장강의 앞 물결」이 됐다. 2일상오 호주와의 결승전이 끝나자 돌아선 그의 어깨선은 가냘프게 떨렸다. 『할말이 없습니다』 싱긋 웃는 모습으로 다시 돌아서면서 하는 한마디였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여전히 감출 수 없는 습기가 배어있었다. 1년여에 걸친 지옥훈련, 은메달에 그친 회한, 10년넘게 정들었던 유니폼과의 영원한 이별… 등등이 오버랩됐으리라. 외동딸로서의 응석부림보다는 고생에 익숙해야 했던 어린 시절, 화순 춘양여중 3학년때 선생님의 권유로 스틱하키를 처음 잡던 날, 93년 오른쪽 무릎인대 파열과 허리디스크로 겪어야했던 은퇴갈등… 등도,세월을 거스른 아픈 과거도 주마등처럼 스쳤을 것이다.
한국 여자하키의 은메달은 불모지대인 국내 환경을 감안하면 사실 기적에 가깝다. 전용구장 하나없는데다 선수라 해봐야 초중고 대학 실업팀 통틀어 2천∼3천명 정도. 호주 네덜란드 독일 등 이른바 하키선진국들이 대부분 수백개의 클럽팀과 경기장을 확보하고 수백만의 동호인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격이다.
그러나 이들은 비인기종목의 설움과 냉대를 서로 감싸안으며 극복해왔다. 세계정상 진입을 위해 물불가리지않고 꿋꿋이 뛰었다. 척박한 「하드웨어」를 탓하지 않고 맨손과 기술만으로 정교한 「한국형 소프트웨어」를 스스로 개발하며 사력을 다했다. 8년전 서울올림픽에서의 은메달은 이들의 노력에 가능성을 심어준 값진 결실. 이에 자신감을 갖고 앞만 보며 달렸다. 이후 89·95챔피언스트로피대회 준우승, 90월드컵 3위, 90아시안게임 우승, 92올림픽 4위, 지난해 올림픽 예선전 1위 등 세계정상권으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했다.
보아주는 관중이 없어도 땡볕속에서 땅을 가르는 장은정과 같은 하키선수들의 때묻지 않은 정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미 은퇴한 임계숙과 함께 한국 여자하키사의 한장을 장식할 장은정. 이번 올림픽서 호주의 앨리슨 안난과 함께 최다득점(8골)을 기록한 그는 『하지만 최선은 다했습니다』고 덧붙이면서도 못내 송구스러운 표정이다.
『호주를 꺾었다는 낭보를 언젠가는 들을 수 있겠죠. 그리고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할 날이 오겠죠』 이제 그는 후배들에게 한물림을 하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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