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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언론 분리시켜야 여론 왜곡·호도 방지(언론학자가본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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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언론 분리시켜야 여론 왜곡·호도 방지(언론학자가본한국일보)

입력
1996.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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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상업주의 벗어야 과열경쟁 사라져무차별한 성폭력이 난무하고 일부 주부까지 성을 상품화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가 이렇게 까지…」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한다. 한편에서는 일부 부유층이 주체할 수 없는 부를 국제적인 도박과 보신관광으로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북녘의 동포는 굶어죽기까지 하고 있는 모양이다. 건전한 스포츠정신을 기대했던 올림픽은 흡사 메달만을 다투는 각축장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또 다른 「신문들의 전쟁」을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요즘 신문보기는 이래저래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신문전쟁의 발단은 신문판촉경쟁을 둘러싼 「살인」사건이었다. 독자들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이 살벌한 무한경쟁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재벌신문은 독점적인 소유구조를 바탕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왜곡시킬 수 있는 문제점을 갖는다는 점에서 재벌의 모그룹과 언론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최근 몇년동안 우리 신문은 엄청난 양적 팽창을 거듭해 왔다. 결과적으로 제한된 우리의 언론시장은 과포화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기존의 시장을 사수하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 그간 신문사들은 서로 증면과 지면·정보개량 보급확대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이 경쟁은 엄청난 자본의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재벌언론은 유리한 위치에서 경쟁을 주도할 수 있었다. 제한된 신문시장을 두고 본격적인 지키기와 뺏기가 비정상적으로 과열되면서 「살인」이라는 세계 언론사상 유래없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다. 우리 언론계가 이렇게까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러가지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신문발행부수공사(ABC)와 신문배달공사제도가 거론되고 재벌의 언론소유를 봉쇄하고 편집권을 경영권에서 독립시킬 수 있는 장치를 만들자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언론과 시민의 관계에서 시민의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언론기본법과 공정거래법, 소비자보호법 등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제시되어 왔던 방안들이다.

한국언론학회는 26일 「신문전쟁, 이래도 되는가」주제의 긴급토론회에 앞서 「저널리즘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여 언론을 철저히 감시,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토론회에서도 지적됐듯이 지나친 상업주의를 벗어나는 것이 과열경쟁을 막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신문협회는 판매공동감시기구를 설치하고 신문강제투입 중단, 경품제공금지, 무가지 구독기간 1개월 등을 골자로 한 자율경쟁규약을 마련해서 위반시에는 처벌하기로 결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반영해 신문고시를 확정, 발표하기로 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지켜볼 일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제도가 부실해서가 아니라 운용자의 철학이나 도덕성이 부실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신문은 먼저 「신문이라는 것」과 독자에 대한 개념정립부터 다시 해야 한다. 신문은 사적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 이전에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서 민주주의가 작동 가능하게 하는 기구로서 그 존재 의의를 갖는다.

독자는 흥미있는 기사로 유인해서 광고주에게 팔아넘길 대상도 아니고 자사의 홍보대상도 아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독자 주권운동」이 활성화하고 있다는 변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이라도 「전쟁」동안 낭비된 지면을, 외면된 국민의 알권리를 다시 보상해 준다는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역사적인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한 5·18공판은 이 기간에도 열렸다. 소위 신군부의 집권시나리오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이들의 엄정한 사법적 심판을 촉구하는 집회도 열렸다. 이 역사적인 재판은 회를 거듭할수록 언론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더니 판촉살인사건와중에는 거의 주변으로 밀려나 있었다.

대부분의 신문이 약속이나 한 듯이 속기록 수준의 요약과 재판정을 스케치하는 가십정도로 다루고 있어서 아쉬웠다.

자사의 이익보다는 역사 바로세우기에 적극적인 「한국일보」를 기대한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 집에는 내가 읽기를 원하지 않는 신문이 배달되어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신문판매협회가 「신문을 강제로 투입하지 않는다」는 자율적인 결의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가 바로 며칠전이다. 신문강제구독신고센터에 전화라도 해서 독자로서 나의 「구독의 자유」를 찾아야 할 판이다.<김영기 전남대 교수·미 미주리대 신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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